죽음 앞에서 사색을 담은 찰스 부코스키의 노년 대표작
민음사,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ㆍ'창작수업'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가 노년에 마지막으로 출간한 대표작 '지구 시의 마지막 밤'(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이 민음사에서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와 '창작 수업' 두 권으로 출간됐다.
20세기 미국 문단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친 시인이자 소설가로 불리는 부코스키는 그의 작품만큼 기이하고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
이 시집은 작가가 70대였을 때 나온 만큼 죽음과 시간에 대한 고민이 많이 담겼고, 초기 시와는 달리 사색적인 색채를 더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내뱉는 말들에 대한 아픈 의미를 끄집어내면서도 특유의 유머로 승화해 내는 재능은 여전하다.
'그렇게 못생긴 남자가 / 그렇게 여자가 많은 건 / 처음 봐. / 게다가 질투도 심해. / 누가 자기 여자를 쳐다보기만 / 해도 주먹을 휘둘러. // 그리고 술에 쩔어 헛소리를 / 해 대고 노래를 부르지. / 그런데 이거 알아? 그 남자 / 시인이야. // 가자고, 문병하러 / 주먹을 부르는 그 / 늙다리!'('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중 '구경거리' 부분)
노시인은 죽음 앞에서도 결코 지나온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년'이라는 주제를 말랑하게만 다루지 않고, 죽음을 인간 보편의 경험이자 생명력에 힘을 부여하는 중요한 주제로 삼는다.
'여태 무얼 거래하고 / 무얼 / 지켜 왔길래 / 시간이란 / 놈들이 / 압박해 올 때 / 우리가 / 빼앗길 만한 / 것이 / 그저 / 목숨뿐인가.'('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중 '승리' 전문)
고달픈 막노동 일을 하다가 49세가 돼서야 전업 작가가 된 부코스키는 자신의 힘겨운 삶에서부터 끊임없이 작가적 상상력을 공급받았다.
'창작 의지만 있다면 / 창작은 / 하루 열여섯 시간 탄광 일을 해도 / 애 셋을 데리고 / 단칸방에서 / 정부 보조금으로 / 살아도 / 몸과 마음이 / 일부 망가져도 / 눈이 멀어도 / 절름발이가 되어도'('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중 '공기와 빛과 시간과 공간' 부분)
작가 지망생 시절의 비참한 현실을 창작으로 승화한 시들 가운데 하나가 '전당포는'이라는 시다.
'어려운 시절 전당포는 나를 도와주었다. / 달리 방법이 없을 때 전당포가 있어서 /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 검은 커튼이 쳐진 부스는 / 뭔가를 포기하고 더 간절한 것을 / 얻는 / 신기방기한 / 성소(聖所)다.'('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중 '전당포는' 부분)
그렇게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시인은 "헤아릴 수 없는 절망, 불만, 환멸을 겪어야 나오는 것이 한 줌의 좋은 시"라고 말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작가의 창작 태도는 명확하다. 철저하게 일상의 삶에 뿌리박아야 한다는 신념, 그리고 그것이 알맹이 없는 형식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확신이다.
'나는 유죄다. 대학에서 한 번 / 그걸 들었으니. / (…) / 작가가 되려면 / 이건 하고 / 저건 하지 말라는 / 교수의 조언은 / 아주 애매모호하고 평균적인 얘기일 뿐 / 아무 쓸모가 / 없다는 것도.'('창작 수업' 중 '창작 수업'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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