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갇힌 3·1운동 참가자 1천명 100년 만에 재조명
수형기록카드 분석 1천300쪽 자료집…20대가 40%, 농부가 절반 이상
북한 지역서 3·1운동 하다 투옥된 사람도 230여명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100년 전 3월 1일 일제에 맞서 독립을 부르짖다가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1천여명의 삶이 새롭게 조명된다.
서울 서대문구는 3·1운동으로 투옥된 독립운동가 1천14명의 수형 기록카드를 분석한 '서대문형무소 3·1운동 수감자 자료집'을 25일 발간한다고 밝혔다.
그간 3·1운동 참가자의 판결문이나 신문 자료 등은 많이 발굴됐지만, 서대문형무소 수감자에게 현미경을 들이댄 학술 자료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대문구는 "1919년 수감된 3천70여명 중 수형 기록카드가 남은 사람을 일일이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은 판결문 등으로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1천300여쪽 분량의 자료집은 수감된 독립운동가들의 연령분포, 직업, 죄명, 형량 등을 집대성했다.
수감된 독립운동가의 연령은 20대가 39.3%로 가장 많았다. 직업은 농부가 절반 이상이지만 학생, 종교인, 교사, 공장 노동자, 의사, 간호사, 마차꾼, 고물상, 면장, 면서기, 순사보 등도 있었다. 여성도 33명이었다.
서대문구는 "3·1운동이 남녀노소, 계층 구분 없이 참여한 민족운동이었음을 통계적으로 실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 결과가 파악되는 929명 중 최대 형량은 징역 12년형이었다. 죄명은 92.6%가 보안법 위반이었고 소요, 출판법 위반, 정치에 관한 죄 등도 있었다.
북한 지역에서 3·1운동을 하다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수감자도 230여명이 발굴됐다. 특히 60여명은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출신이었다.
서대문구는 "그간 북한 지역 3·1운동은 주목받지 못했다"며 "자료가 향후 남북한을 포괄하는 3·1 운동사 정립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분석 대상 1천14명 중 672명만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형제가 동시에 3·1운동에 참가했지만 한 사람만 공훈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서대문구는 25일 오후 2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강의실에서 이 같은 자료집 내용을 발표하는 학술 심포지엄을 연다.
bang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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