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해야 하는데…아침 9시, 아이 학교는 누가 보내죠?"
저출산위원회, 직장맘 10명 '일·생활 균형' 간담회 개최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아이가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등교 시간이 아침 9시에요. 저도 남편도 출근시간이 안 맞는데 당장 누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나요."
"육아휴직을 요청하니 사업주가 '이래서 내가 기혼자를 안 뽑는다'며 퇴사를 권합니다. 육아휴직 기간 퇴직금은 받지 않고 휴직 기간이 끝나고 복직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육아휴직을 받았어요."
20일 일과 출산·육아를 병행하는 '직장맘'들이 출근과 야근으로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부터 육아휴직이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했다가 해고를 당했던 일까지 그간 겪어온 고충을 쏟아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서울특별시와 함께 이날 서울 용산구 상상캔버스에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직장맘 10명을 초청해 간담회를 개최했다.
◇ 동료도 꺼리는 유연근무…등·하교 시간에 발 동동
직장맘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에 다니려면 아이가 학교나 어린이집, 유치원에 오가는 시간에 맞춰 출·퇴근을 해야 하는데 현실은 이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30대 직장맘 정모씨는 최근 15개월 출산·육아휴직을 사용하고 복직했다. 회사가 먼 거리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데려오기 힘들어져 유연근무를 신청하려 했지만 동료들 시선에 단념했다.
정씨는 "유연근무 신청 전 팀원들과 먼저 상의를 했다"며 "그런데 팀원들조차 '우리 회사는 규모가 작아 대체인력을 구할 수 없다', '현실을 봐라'라며 공감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의 직장맘은 '돌봄 절벽'을 경험하고 있다. 양가 부모님에게 아이를 맡길 수 없는 부모들 가운데 한명은 퇴직을 고민해야 하는 실정이다.
30대 직장맘 김모씨는 "그동안 직장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맡아줬는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니 막막하다"며 "등교시간 40분 전에 도서관 문을 연다고 하는데 아이가 고학년과 같이 잘 지낼지도 걱정이고, 교실에 잘 찾아갈 수 있을지도 불안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운 좋게 돌봄교실을 이용하게 됐지만 낮 12시 30분∼1시 하교시간을 맞추려면 남편과 분 단위 스케줄을 쪼개서 짜야 한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퇴근해야 하는 상황인데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직장을 다니기 힘들어질 것 같다"고 호소했다.
40대 직장맘 한모씨 역시 "맞벌이 부부인데 (업무로) 아이 하교시간을 못 맞출 때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다"며 "결국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또 아이가 아플 때 돌봐줄 사람이 없거나 돌봄시설에 맡긴 아이가 계속 감염병에 걸려 안타까워하는 직장맘도 있었다.
40대 직장맘 장모씨는 "아이가 전염병에 걸려 어린이집을 보낼 수 없게 됐는데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며 "아기 돌봄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했는데 절차가 복잡해 신청 자체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장씨는 "힘들게 돌봄 선생님이 왔지만 낯선 사람이라 그런지 계속 울고, 병도 낫지 않았다"며 "이후에도 시간제 돌봄서비스 등을 이용하고 있는데 아이가 계속 병에 걸려온다"고 토로했다.
◇ 단축근무 신청하니 '권고사직'…육아휴직 이후 업무변경
직장맘들은 단축근무, 육아휴직을 기피하는 회사 분위기 속에서 권고사직, 직무변경 등 각종 불이익을 당하고 결국 경력단절을 경험하게 된다고도 토로했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30대 김모씨는 금요일에 단축근무를 신청했더니 월요일에 '권고사직'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남아있던 연차 등을 모두 소진하고 15일 만에 결국 해고당했다.
김씨는 "이후 구직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를 낳으면 사회에서 배척을 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전화로 회사와 면접 일정을 잡던 중 아이 울음소리가 나면 '아이가 몇 개월이냐'며 다시 일정을 잡자는 이야기를 5차례나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남편과 가난하게 살기로 결정했다"며 "적은 급여를 받더라도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싶은데 이런 환경에서는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개인병원에서 근무하는 10년 차 직장맘 김모씨 역시 육아휴직을 요청했다가 해고 위기에 처했다. 김씨는 사업주가 요구하는 퇴직금 포기 등의 조건에 동의하는 각서를 쓰고서야 육아휴직을 받아냈다.
김씨는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니 사업주가 '기혼자는 언젠가 애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고, 결국 사업장이 피해를 보게 된다'며 퇴사를 권했다"고 털어놨다.
육아휴직 이후 회사에 복귀하면 과거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업무에 배정되는 사례도 있었다.
웹디자이너로 20년간 일해온 김모씨는 출산 당일까지도 근무하고 퇴근 후 아이를 낳았다. 하루에 수차례 입덧을 하면서도 만삭의 몸으로 회사에 다니며 '내가 이 자리까지 어떻게 왔는데'라며 버텼다.
그런 김씨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결국 육아휴직을 고려하게 됐다. 하지만 김씨는 육아휴직 이후 복귀 때는 영업직으로 근무하라는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받아야 했다. 정신상태가 해이해졌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회사는 휴직 전후 직책과 임금이 동일하면 업무변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며 "'애 엄마여서 그렇다'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더 열심히 일했는데 너무 좌절스럽고 매일밤 악몽을 꾼다"고 토로했다.
◇ "국가 돌봄서비스 확대…직장맘 고용 보장"
정부와 지자체도 이런 직장맘 고충에 공감하며 돌봄서비스 확대와 직장맘의 고용에 대한 보장을 약속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상희 저출산위 부위원장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일·생활 균형에 취약한 중소기업 직장맘의 고충을 청취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진 장관은 직장맘 10명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뒤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며 "관련 제도가 조금씩 진전되고 있는 만큼 새로운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아이를 키우며 본인의 삶의 질을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저희(여가부)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부위원장 역시 "기가 막힌 일"이라며 직장맘들의 고충에 공감했다.
그는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제도와 지원 예산이 있지만, 전체 기업의 99%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에서는 작동이 안 됐다"며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역시 육아휴직으로 해고를 당하는 직장맘과 같은 불법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장관은 "직장맘들의 사례들 가운데는 명백하게 법을 위반한 경우"라며 "다만 출산·육아휴가는 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외의 제도들은 강제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에서도 회사 내 고용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특히 중소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를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저녁에 갑자기 회의가 잡히거나 주말에 회사에 나가야 하면 한두 번은 사정할 수 있지만, 이렇게 직장생활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이런 틈새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도 어린이집, 초등학교 아동들의 돌봄을 책임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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