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 오희문이 본 임진왜란…'쇄미록' 완역본 출간
국립진주박물관, 번역서·교감본 8권 선보여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최근에는 걸인이 매우 드물다. 모두 두어 달 사이에 이미 다 굶어 죽었기 때문에 마을에 걸식하는 사람이 보기 드물다고 한다. (중략) 이러다 사람의 씨가 말라 버리겠다."
조선시대 사대부 오희문(1539∼1613)은 1594년 4월 3일 작성한 일기에서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인해 피폐해진 사회상을 묘사했다. 그는 식량이 떨어져 인육을 먹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들었다면서 안타까움과 절망감을 드러냈다.
학문은 뛰어났으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오희문은 1591년 11월 27일 한양을 떠나 경기도 용인에 사는 처남 서당에서 머문 이야기를 시작으로 1601년 2월까지 9년 3개월간 일기를 썼다.
이 자료가 보물 제1096호이자 난중일기, 징비록과 함께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는 '쇄미록'이다.
국립진주박물관은 2017년 시작한 '임진왜란자료 국역사업'의 첫 성과로 쇄미록 완역본을 18일 출간했다.
출판사 사회평론이 펴낸 쇄미록 완역본은 8권으로 구성됐다. 1∼6권은 번역서이고, 7∼8권은 여러 판본을 비교해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교감(校勘)과 원문에 마침표나 쉼표를 찍는 표점(標點)을 한 책이다. 번역, 교감, 표점 작업은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가 했다.
오희문은 자신의 피란 생활에 빗대어 시경(詩經)에 나오는 '자잘하며 보잘것없는 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로다'라는 구절에서 쇄미록이라는 책 제목을 따왔다.
쇄미록은 앞서 국사편찬위원회와 연안이씨 문중이 번역한 바 있으나, 현재는 모두 절판됐다.
박물관은 29년 만에 쇄미록 번역서를 내면서 현대에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고, 당대 역사적 사건과 인물·지명은 3천여 개에 달하는 주석을 통해 설명했다.
최영창 국립진주박물관장은 "쇄미록에서 오희문은 양반 가문의 일원이자 고통받는 나라의 백성으로서 다양한 역할과 일상을 실감 나게 기록했다"며 "이를 통해 양반과 노비의 관계, 사회적 관계망, 경제활동 등 생활상을 자세히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면이나 곽재우 같은 의병에 대한 찬사와 명군의 횡포에 대한 비판적 인식처럼 임진왜란 이면의 이야기도 적었다"며 "전쟁이 개인과 가족, 국가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파괴하는지에 대해 언급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각 권 앞부분에는 오희문의 이동 경로와 가계도, 주요 등장인물을 정리해 실었고, 뒤쪽에는 인명록과 색인을 수록했다.
각 권 340∼740쪽. 2만∼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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