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베트남전쟁 40주년…접경 '상전벽해', 참전군인 상흔은 여전

입력 2019-02-18 14:44
中·베트남전쟁 40주년…접경 '상전벽해', 참전군인 상흔은 여전



(선양=연합뉴스) 차병섭 특파원 = 공산주의 국가간의 대규모 무력충돌인 중국·베트남 전쟁 40주년을 맞아 중국 접경지역의 눈부신 발전상과 함께 참전 병사들의 사라지지 않는 전흔이 중화권 언론에 잇따라 소개되고 있다.

이들 접경지에는 중국이 1979년 2월 17일 같은 공산국가인 베트남이 크메르루주 정권 치하의 캄보디아를 침공한 것 등에 대한 응징을 명분으로 대대적인 공격에 나선 곳으로 양국 갈등의 상징적인 장소로 알려져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당시 분쟁지였던 접경도시 윈난성 마리포(麻栗坡)현이 군사 테마 관광지의 중심지로 발전하고 있다고 주변지역 소식을 전했다.

마리포 지역당국에 따르면 1억3천만 위안(약 216억원)을 투자한 관광시설이 오는 4월 말 개장, 매년 10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관광시설에는 지뢰박물관, 전시 무기 전시장, 최신 기술을 이용한 전투 체험 게임장 등이 들어서 애국 교육 관광지로 거듭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덕분에 농사만 짓던 지역 주민들도 숙박, 요식업, 특산품 판매 등의 사업 기회가 열리는 등 벌써부터 주변지역에 활기가 감돌고 있다.

특히 인근의 톈바오(天保) 통상구(口岸·커우안)는 지난해 대외교역 규모가 약 35억 위안(5천819억원)에 달할 만큼 경제 규모가 커졌다고 글로벌타임스는 전했다.

한때 총부리를 겨눴던 중국과 베트남의 교역도 관계발전과 함께 큰 폭으로 늘어났다.

실제 중국과 베트남의 작년 교역액은 중국의 베트남 투자 및 관광객 증가에 힘입어 사상 최대인 1천500억 달러(약 168조6천300억원)를 기록하기도 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통상뿐만 아니라 인적 교류도 활발하다.

마리포에 자리잡은 300가구 규모의 윈링(云嶺)촌에는 베트남인 신부가 28명에 달할 정도로 중국 남성과 베트남인 여성의 결혼도 활발하다는 것이다.

만리포 지역 학자인 앤드류 덩은 "전쟁이 접경지 주민들에게 증오를 남기지 않았다"면서 "수백 년간 같은 문화, 종족성, 연대의식을 가져온 양국 접경지 주민들의 관계는 쉽게 깨질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베트남과의 전쟁에 참전했던 중국인민해방군(PLA)의 '잊혀진' 퇴역군인들의 아픔에 주목했다.

중국은 30만명의 참전 병력 중 7천명 가까운 사상자를 내면서 베트남 국경을 돌파했으나 베트남군의 캄보디아 침공을 막지 못했다. 이 때문에 양측이 모두 승리를 선언했지만, 대체로 중국이 성공하지 못했다는게 역사학자들의 평가라고 SCMP는 설명했다.

퇴역군인 중 한명인 중젠창은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 당국이 40년간 전쟁에 대해 침묵해왔다"면서 "참전군인들도 전쟁 발발 40주년을 기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른 지역의 참전군인들도 중국 당국으로부터 40주년 기념행사나 대중 집회에 참여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퇴역군인은 "모든 포로가 이후 군사적 지위를 박탈당했다"면서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고 가족들도 매우 고통받았다.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해 연금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 정부가 군 효율화를 명목으로 대량 해고 등을 단행하면서 수많은 장병들이 밀려났고, 일자리를 찾지 못해 불만을 품은 퇴역군인들은 항의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베트남과의 전쟁에 참전했던 한 군사역사학자는 "(당국이) 퇴역 군인의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점이 바로 당국과 싸우는 이유"라고 말했다.

bs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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