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아이 안낳을래" 정관수술 고민하는 20대 남성들
(서울=연합뉴스) 곽효원 이세연 인턴기자 = "비(非)출산이 여성의 문제로만 논의되는 게 이해가 안돼요. 육아로 겪는 경력단절은 남녀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미혼인 김민준(가명·27)씨는 지난해 11월 정관수술을 받았다. 1년 넘게 여자친구와 결혼과 출산 문제를 논의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각자의 계획과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결혼을 해도 아이는 낳지 말자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합의했지만 실제로 수술하기는 쉽지 않았다. 20대 젊은이에게 정관수술을 해주지 않으려는 비뇨기과 의사를 세번이나 찾아가 설득해야 했다.
김씨는 "의사가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며 수술을 안 해주려고 했어요. 헌법에 나온 행복추구권까지 이야기하면서 설득한 끝에 수술을 받을 수 있었죠"라고 회고했다.
주변의 시선도 긍정적이진 않았다. 수술 사실을 몇몇 지인에게만 털어놨더니 대다수가 '애가 없으면 노후에 외로울 것'이라고 걱정했고, 일부는 문란하게 보거나 애국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김씨는 "(일부는) 피임도구 없이 성관계를 하려는 무책임한 젊은이로 보기도 하죠. 현실적으로는 수술받더라도 위생 문제 때문에 피임도구는 사용해야 해요"라며 "저출산 국가여서 아이를 낳지 않으면 애국자가 아니라는 논리는 이해가 안 돼요. '부국강병' 같은 말로 제 행복을 제약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김씨는 "아버지한테 말하면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며 아직 가족에겐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정관수술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선택이라는 믿음엔 변화가 없다고 했다.
◇ 정관수술을 고민하는 이유는?
정관수술을 고민하는 건 김씨만이 아니다. 박현우(가명·24)씨도 21살이던 3년 전 정관수술을 받기 위해 의사와 상담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가 없다는 이유였다. 박씨가 비출산을 결심한 이유도 '미래의 아내'가 출산 때문에 받게 될 차별과 경제부담 때문이었다.
"출산 이후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와 육아 부담을 생각하면 낳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아내가 겪게 될 사회적 불이익까지 감수하며 아이를 낳고 싶진 않아요. 내가 육아를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맞벌이로도 생계유지가 힘든 세상이잖아요"
박씨는 결혼 상대를 만나면 그와 의논해서 다시 정관수술을 시도할 생각이다.
정관수술을 고민 중이라는 윤준혁(가명·25)씨도 "출산이 여성의 경력단절로 이어지면 경제적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어요"라며 "출산과 양육이 여성의 영역이라고만 보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비출산 결심 뒤에는 취업난이 있었다. 윤씨는 "취업할 나이가 되자 출산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라며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요. 경제적으로 아이에게 들어갈 부분을 부부에게 쓰면 오히려 삶의 질이 높아질 것 같아요"라고 토로했다.
회사원 이형수(가명·28)씨가 정관수술을 할까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취업준비생 때였다. "몇 년 전에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할 일이 있었어요. 결과를 기다리는 데 (미혼이고 취업도 못했는데 아기가 생겼을까봐) 겁이 났어요. (이 일을 계기로) 자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는데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 상대를 만나면 정관수술을 할 거라고 한 박현우씨는 "비출산은 결국 금전 문제"라며 "돈이 없으니 집을 포기하고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과 자식까지 포기하는 거죠"라고 단언했다.
정관수술을 한 김민준씨는 자신의 삶을 줄타기에 비유했다.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면 줄 위에 서 있는 건 가능하지만, 아이를 낳는 건 줄 위에서 뛰는 행동이라는 것.
"아이를 낳아서 더 큰 행복으로 뛰어오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줄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 모험이라고 생각해요.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모험을 감행할 이유를 못 느낀 거고요"
◇ 비뇨기과 의사 "20대 정관수술에 낙태와 비슷한 책임감"
미혼 남성의 정관수술 실태는 아직 통계 수치로 집계돼있지 않다. 정관수술이 비보험 항목이어서 구체적인 데이터가 수집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의도에서 비뇨기과를 운영 중인 한 의사는 "20대가 정관수술을 결심하고 병원을 찾아오는 경우는 1년에 한 명꼴인 것 같다"고 전했다. 아직 널리 보편화한 현상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20대 정관수술은 시술이 꺼려진다. 낙태와는 조금 다르지만 의사로서 비슷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20대 정관수술은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민구 인제대 서울백병원 비뇨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정관수술 후 15년이 지나면 복원 수술을 해도 임신율이 30% 아래로 내려간다. 박 교수는 "결혼 시기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에, 20대에 정관수술을 해버리면 결혼 후에 후회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kwakhyo1@yna.co.kr, sey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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