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다] 심옥주 "여성독립운동은 한국 어머니들의 역사"

입력 2019-02-17 09:00
[묻고 답하다] 심옥주 "여성독립운동은 한국 어머니들의 역사"

"서훈 기준 완화하고, 품격도 재심사해야"

"무명여성독립운동기념탑·여성독립운동연구센터 건립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은주 논설위원 = "여성독립운동가 연구는 한국 어머니들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함이 제대로 대우를 받을 때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행적도 빛을 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은 "독립운동의 거의 전 부문에 걸쳐 많은 여성이 활약했으나 기록 부족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여성 독립운동의 특수성을 고려해 서훈 기준을 완화하고 품격도 재심사해야 할 부분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심 소장은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무명여성독립운동기념탑을 세우고, 장기적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부 주도의 여성독립운동연구센터를 건립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세계 여성운동가의 선상에서 제대로 재평가해야 하는 시점이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이 아닌가 한다"라며 "국내에만 머물지 말고 해외로 연구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여성들은 독립운동을 어떻게 시작했나.

▲ 의병부터이다. 처음에는 뒷바라지 수준에 머물렀다. 그 틀을 깬 사람이 윤희순이었다. 그는 30여명의 여성 의병 단체를 이끈 의병장이었다. 정보 수집을 하고, 화약을 만들고, 현장에 뛰어들었다. '의병군가,' '병정가' 등 여러 편의 의병 가사를 남겼다. 25년간 의병운동을 했고, 이후 만주로 건너가 15년간 노학당을 꾸려 항일인재를 양성했다.

1907년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처음에는 양반가 여성들이 움직였지만, 민중과 합쳐지면서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보이지 않게 여성들이 조직화됐다. 여학생들이 이를 지켜봤다.

여학생들은 어머니 세대의 정신을 고스란히 입고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여성들의 움직임은 3.1운동을 기점으로 조직화됐다. 서대문형무소에 함께 수감된 여성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을 하면서 나오자마자 단체를 꾸렸다. 일제가 휴교령을 내리자 여학생들이 고향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민중들이 움직이는 장날 독립선언서를 투척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 여성독립운동가들은 주로 어떤 방면에서 활약했나.

▲ 독립운동은 크게 의병 활동, 국내 항일, 3.1운동, 문화 운동, 학생운동, 의열투쟁, 중국 활동, 만주 활동, 노령 활동, 광복군 활동, 임시정부 활동, 미주 활동 등으로 분류한다. 각 부문 모두에 여성들이 참여했다.

지금까지 357명의 여성독립운동가가 건국훈장을 받았으나 언론에 이슈화된 분은 극히 일부이다. 새롭게 알려야 한다. 여성독립운동가 인명록을 100명 단위로 만들고 있는데, 다음번에 100명, 또 다음에 100명씩 계속 쓸 수 있도록 발굴되면 좋겠다.

-- 그동안 많은 여성이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훈을 받지 못했다.

▲ 여성들의 경우는 독립운동 사실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했다. 그나마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많이 소실됐고, 만주, 간도 일대에서는 후손들이 살아남기 위해 일부러 자료를 없앨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정황들도 확인된다. 미주에 가보니 어떻게 신청하는지 몰라서 그냥 들고 있었던 사례도 있었다.

'수형 6개월 이상' 등 서훈 기준이 있는데 남녀 구분 없이 그대로 적용했다. 여성들은 기준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 활동의 특수성을 참작해 서훈 기준도 다시 마련하고, 품격도 재심사가 돼야 하는 부분이 있다.

최근 들어 서훈 기준이 완화됐다. 수형 기록이 없더라도 뭔가 지속해서 독립운동 활동을 했다는 흔적이 있는 경우, 본인의 일기나 기초 자료 등 그나마 확인되는 경우는 재검토하고 있다.



--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 원래 백범 김구 선생을 주제로 논문을 쓰다가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을 알게 됐다. 이 부분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굉장히 매료됐다. '아,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여성독립운동가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바로 현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2009년에 윤희순 평전을 냈고, 2011년에 윤희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를 설립했다.

▲ 2009년 3월 1일 문을 열었다. 올해가 꼭 10년이 됐다. 설립 당시만 해도 학계에서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역사 연구가 남성 위주, 지도자 위주로 흘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어머니의 역사이니까 당연히 누군가가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산대학교 조교수로 있으면서 급여에서 30~40%를 떼서 사무실을 차리고 책 내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이 부분은 자료수집이 아예 안 돼 있다 보니, 어설프게나마 현장에도 가야 했다. 주로 방학을 이용해 연구했다. 작년에 부산대를 사직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 유관순의 서훈 관련해서 논란이 있다.

▲ 김구, 이승만, 안창호, 안중근 등 30여명이 받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에 여성이 한 분 있다. 중국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이다. 이들 부부가 독립운동을 후원한 기록은 많이 확보돼있다. 쑹메이링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며 독립운동가인 권기옥이 다닌 윈난항공학교를 전적으로 후원해 권기옥과도 연결돼 있었다. 쑹메이링이 대한민국장을 받은 것과 비교해볼 때 유관순의 서훈이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에 그친 것은 생각해볼 문제이다. 한 등급이라도 격상돼야 하지 않을까.

유관순은 온 국민이 인정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그의 품격부터 바로잡으면서 다른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품격도 재정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여성독립운동가 선양과 관련해서 정부에 바라는 것은.

▲ 첫째, 무명여성독립운동 기념탑 건립이다. 특정 인물을 떠나서, 서훈을 받고 안 받고를 떠나서 다 함께 싸웠던 모든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무명여성독립운동기념탑을 100주년에 건립해야 한다고 정부에 제안했다. 서대문형무소 밖 독립공원을 최적지로 보고 서대문구청과 논의 중이다. 이미 국내외에서 모금이 들어오고 있다. 3월 8일,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여성독립운동가 100인 그림전과 함께 모금 운동을 벌이려고 한다. 국민들의 성금이 모여서 우리 한국 어머니들의 역사를 기릴 수 있는 탑이 하나 세워지기를 기대한다.

또 하나는 전국을 총괄해 여성독립운동을 연구할 수 있는 정부 주도의 여성독립운동연구센터 설립이다. 올해 100주년이라 해서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 차원에서 연구가 계속될 수 있도록 연구센터 건립이 필요하다.

-- 지난 10년간 여성독립운동가 연구를 하면서 가장 인상에 남는 분은.

▲ 도산 안창호의 부인 이혜련 애국지사이다. 미주에서 대한여자애국단이 조직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혜련 지사가 있었다. 1919년 남편은 상하이로 떠나고 혼자서 세 아이를 키웠다. 독립자금에 보태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오후 6시까지 농장에서 일하고, 재봉틀을 사용해 손수건을 만들어서 한장에 1달러씩 팔았다. 애국단이 조직됐을 때 자신은 수장 자리를 거절했다. 수장을 맡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돈을 벌어 현실적으로 보탬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앞으로 연구 과제는.

▲ 3.1운동 100주년이라 국내에 집중하고 있는데 사실은 서대문형무소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중국 충칭과 상하이, 만주, 간도에서 움직였던 여성들의 활동 루트, 미주, 하와이에서부터 멕시코로, 쿠바로 넘어간 루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여성독립운동가들을 세계 여성독립운동가, 세계 여성운동가의 선상에서 제대로 재평가해야 하는 시점이 100주년이 아닌가 한다.

-- 사회주의 계열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는.

▲ 지난해 8월 '남북한 여성독립운동가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가졌다. 서훈 받은 여성들을 분석해보니 50% 이상 60% 가까이가 북한지역 출신이었다. 이 지역 여성들, 여성단체들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한다. 북한에는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 외에는 여성독립운동 관련 자료가 거의 묻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들이 만든 책을 통해 당시 여성들의 움직임이 제법 파악이 됐다. 계속 추적을 해야 할 것 같다.

인물별로 파고들어 연구하려면 뒷받침이 돼야 하는 것이 만주와 간도 연구이다. 이것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만주와 간도 연구가 받혀준다면 사회주의 계열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러시아 지역의 경우 서훈 받은 분이 김 알렉산드라 한 분인데, 그 외에도 있을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한 연구도 아직 안 되어있다. 할 일이 많다.

-- 여성독립운동가 연구의 의미는.

▲ 여성독립운동가 연구는 한국 어머니들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그것을 제대로 못 했다. 나는 그러한 연구가 당연하다 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당연함이 제대로 대우를 받을 때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행적도 빛을 발하지 않을까.





※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은 부산대학교에서 2011년 윤희순의 의병 활동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 2013년 동의대학교에서 도산 안창호의 정치철학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부산대학교 조교수로 일하며 2009년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를 만들었다. 지난해 부산대를 사직했다. 현재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 국가보훈처 사료수집 전문위원, 한국보훈학회 지식정보분과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여성독립운동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2016년 제15회 유관순상을 받았다.

ke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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