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씨앗·동물의 알도 외부 환경 등 서로 정보교환

입력 2019-02-12 07:00
수정 2019-02-12 08:04
식물 씨앗·동물의 알도 외부 환경 등 서로 정보교환

조기 발아하거나 일제히 부화, 진화과정서 획득한 능력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생물은 각자 주위 환경에 관한 정보를 수집, 동료나 적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살아간다. 생존에 꼭 필요한 이런 활동이 사실은 '태어나기 전'부터 활발히 이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역을 다투느라 짖어대는 개. 화려한 색상으로 씨를 옮겨줄 새를 유혹하는 체리,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공작, 페로몬을 분비해 짝을 짓는 물고기, 춤 동작으로 꿀이 있는 곳을 동료에게 알리는 꿀벌 등 이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소리, 빛, 화학물질 등으로 다양하지만 생물은 이런 전략적 정보를 주고 받도록 진화해 왔다.



일본 삼림종합연구소 무카이 히로미(向井裕美) 연구원 등은 식물의 '씨앗'끼리도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11일 전했다.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인 질경이는 다른 식물과 같은 장소에서 무성하기 위해서는 빨리 성장해 경쟁에서 이길 필요가 있다.

연구팀은 용기에 질경이 씨만을 뿌린 경우와 경쟁상대인 클로버 씨를 동시에 파종한 경우 발아에 걸리는 시간에 차이가 있는지 관찰했다. 조사결과 질경이 씨만 파종한 경우 발아에 5.6일이 걸렸지만 클로버 씨와 함께 파종한 경우 4.1일로 발아에 걸린 시간이 35시간 정도 빨랐다. 발아 타이밍이 고르게 모이는 경향도 관찰됐다.

씨앗의 추출액을 이용한 실험에서도 같은 경향을 보였다. 질경이 씨는 모종의 수용성 화학물질을 통해 클로버 씨의 존재를 '파악', 화학물질을 경유해 동료끼리 서로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보교환이 경쟁하는데 유리할까. 무카이 연구원은 "빨리, 같은 타이밍에 발아한 경우 질경이의 성장이 빨라져 클로버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면 유리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교토(京都)대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벼와 유실수 등을 망치는 노린재의 알도 동료의 자극을 감지하는 구조를 밝혀냈다.

일본에 흔한 누린재나무 노린재는 한꺼번에 30개 정도의 알을 낳는데 이중 1개가 부화하면 주위의 알도 10~15분만에 일제히 부화한다. 알과 알이 떨어져 있으면 전체가 부화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제히 부화하도록 알 끼리 모종의 정보이용이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팀이 알이 깨질 때 생기는 미세한 진동을 인공적으로 만들어주자 알이 부화했다고 한다. 진동을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일제히 부화할 필요가 있을까. 이유의 하나로 생각할 수 있는 건 동족끼리 서로 잡아 먹는걸 피하기 위해서다. 제각각 부화하면 먼저 부화한 유충이 나머지 알을 먹어 버린다. 또 체격과 껍질벗기 타이밍에 차이가 생긴 형제간에 서로 잡아 먹는 일이 발생한다. 일제히 부화하면 이런 싸움이 일어나기 어렵다. 진동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은 형제간에 모종의 '휴전협정'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는 이런 현상을 거꾸로 이용하면 노린재를 효과적으로 구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엄마와 알이 정보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알을 지키는 검노린재 암컷은 알 덩이를 격렬하게 흔들어 댄다. 엄마가 알이 일제히 부화하도록 신호를 보내 새끼들이 서로 잡아먹지 않고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호주 디킨대학 연구팀 등이 과학전문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일본에서도 많이 사육하는 금화조는 기온이 높을 때 어미새가 내는 울음소리를 알 속의 새끼가 듣는다고 한다. 이 정보는 온도환경에 적합한 새끼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어미가 꼭 새끼를 위해 운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새끼가 어미새의 울음소리를 장래준비에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알이 외부상황에 반응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보스턴 대학의 카렌 워켄팅 교수에 따르면 도롱룡류의 알은 포식자인 플라나리아의 냄새를 맡으면 부화를 늦춘다. 플라나리아는 도롱룡 새끼를 먹지만 알은 먹지 않기 때문에 부화하지 않음으소써 포식자가 지나가도록 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꾸로 빨리 부화한 사례도 있다. "먼저 도망해 버리는" 전략인 것으로 추정된다.

무카이 연구원은 "종자와 알은 '수동적 존재'라는게 일반적 인식이지만 사실은 적극적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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