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양승태' 47개 혐의…재판거래·블랙리스트
檢 "법원 이익 위해 재판거래"…사법농단 혐의 대부분에 '공범' 적시
梁, 혐의 전면 부인…치열한 법정공방 예고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검찰은 11일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총 47개 범죄혐의를 적용했다.
사법농단 수사에서 드러난 주요 범죄혐의 대부분에 양 전 대법원장이 직·간접으로 연루됐다고 본 것이다.
이들 범죄사실은 그 의도나 성격에 따라 ▲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의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 ▲ 대내외적 비판세력 탄압 ▲ 부당한 조직 보호 ▲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 및 집행 등으로 분류돼 공소장에 담겼다.
가장 대표적인 사안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민사소송을 박근혜 정부와의 '재판거래' 수단으로 삼았다는 의혹이다. 소송 결과를 뒤집거나 지연시킴으로써 박근혜 정부는 외교적 이득을 챙기고, 양승태 사법부는 상고법원 추진이나 법관 재외공관 파견 등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뜻에서 '뒷거래'를 한 것으로 검찰은 본다.
'사법농단' 양승태 구속기소…헌정 사상 법정서는 첫 사법수장 / 연합뉴스 (Yonhapnews)
검찰은 일본 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압수수색해 김앤장 소속 변호사와 양 전 대법원장 간 면담결과가 담긴 내부 보고문건을 물증으로 확보하기도 했다.
이 문건에는 대법원이 강제징용 재판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청와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심리할 계획을 가졌다는 구체적인 계획 및 심증을 김앤장 측에 귀띔한 정황이 담겼다.
양 전 대법원장이 "배상 판결이 확정되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주심 대법관에게 거론하며 원고 청구기각 의견을 전달 것도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도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관여한 정황이 있는 핵심 혐의로 꼽힌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해마다 사법행정이나 특정 판결을 비판한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려고 이른바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문건을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기간 문건에서 물의 야기 법관으로 거론된 판사는 총 31명에 달했고, 일부 판사들은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사법행정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실제로 문책성 인사 조처를 당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밖에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공작 사건 ▲ 옛 통합진보당 관련 행정소송 ▲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유출 ▲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사용 등의 혐의사실에서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과 공모한 혐의를 받는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이들 범죄혐의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실무자가 알아서 한 일"이라며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후배 법관의 진술에 대해선 '거짓'이라는 취지로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함에 따라 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측 간 치열한 공방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검찰은 이날 함께 재판에 넘겨진 박병대 전 대법관에게 총 33개 범죄혐의를 적용했다.
상당수 혐의사실은 양 전 대법원장과 겹치지만, 서기호 전 의원의 법관 재임용 탈락 불복소송에 개입한 의혹과 관련해선 혐의가 단독으로 인정됐다. 그는 사업가 이모씨의 부탁을 받고 수차례에 걸쳐 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접속해 사건 진행 상황을 무단 열람한 혐의도 별도로 받는다.
이날 함께 기소된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에겐 18개 범죄혐의가 적용됐다. 옛 통진당 관련 행정소송에 개입하거나 문 모 전 부산고법 판사의 비위를 은폐하기 위해 형사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 등이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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