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몰랐지 인생도 몰랐나?"…순천 할머니들의 인생일기
늦깎이에 글·그림 배워 작가 된 할머니들 단행본 펴내
(순천=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못 그려도 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고 절로 행복해집니다"(손경애·68세)
늦은 나이에 글과 그림을 배워 전시회를 열었던 전남 순천 할머니들의 인생 일기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순천 소녀시대'라 불리는 할머니 20명의 살맛 나는 인생 이야기를 담은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 봄날·190쪽)에는 눈물과 웃음이 배어 나온다.
지난해 4월 순천그림책도서관 한글작문교실의 할머니들은 '내 인생 그림일기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글과 그림을 배웠다.
그림책 작가와 함께 동그라미, 네모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 할머니들은 꾸준히 그림을 그렸고,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작품으로 순천과 서울 등에서 원화 전시를 열었다.
전시는 SNS와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출판사 10여곳에서 의뢰가 들어와 단행본 출간까지 이어졌다.
올해 79세의 안안심 할머니는 책에서 "지금은 혼자서 은행 일도 다 봅니다. 그래서 비밀통장도 만들었습니다"며 공부가 준 큰 선물이라고 썼다.
김영분(79) 할머니는 6·25 때 피난을 나서며 숨진 동생을 종일 업고 다녔던 것을 회상하며 "지금도 동생이 보고싶다"고 썼다.
김명남(70) 할머니는 "공부를 하니까 젊어지고 활달해지고 방송, 잡지에 나와 대단한 사람으로 느껴진다"며 "지금 내 인생의 최고 행복"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들과 함께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던 김순자씨는 추천사에서 "누구나 무언가 한구석 채우지 못한 부분이 있고 숨기고 싶은 것이 있지만, 그렇다고 인생 전체가 부족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배움이 채움이 조금 늦더라도 어느 순간 눌려 있던 재능이 활짝 꽃피는 순간이 찾아올지 모른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울고 웃던 수많은 시간, 그 곁에서 보낸 하루하루가 내게도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썼다.
순천그림책도서관은 할머니들을 위해 16일 오후 2시 도서관에서 출간 기념 북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작가와 가족, 독자, 전국 도서관 관계자와 시민이 함께 모여 책 소개와 미니 북토크, 원화전시, 축하공연 등이 진행된다.
동네책방과 전국 도서관 순회전시에 이어 4월에는 미국 필라델피아 등 3개 도시에서 순회전을 열기로 했다.
나옥현 순천그림책도서관장은 7일 "책을 내려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출판사 10여 군데서 먼저 의뢰가 들어와 단행본으로 출간하게 됐다"며 "항상 소외당하고 낮은 곳에서 산다고 생각했던 할머니들이 작가가 돼 자존감도 높아지는 등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minu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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