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인권변호사' 한승헌, 44년 만에 국가 배상 승소

입력 2019-02-07 14:33
'1세대 인권변호사' 한승헌, 44년 만에 국가 배상 승소

1972년 故 김규남 의원 애도 글 발표했다가 징역형…고법 "억울한 누명으로 고통"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1세대 인권변호사'로 불리는 한승헌(85) 전 감사원장이 과거 연루된 시국사건으로 44년 만에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5부(이동근 부장판사)는 한 전 감사원장과 부인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약 3억5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 전 감사원장은 이른바 '유럽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당한 고(故) 김규남 의원을 애도하는 '어떤 조사'라는 글을 1972년 여성동아에 발표하고, 2년 뒤에는 같은 글을 자신의 저서에 실었다.

이로 인해 그는 반국가단체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1975년 구속기소 됐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2심을 거쳐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다.

한 전 감사원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292일간 구치소에 수감됐고, 8년 5개월간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한 전 감사원장은 재심 끝에 2017년 무죄를 선고받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원고를 불법으로 가두고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가혹 행위를 했다"며 "보편적 자유와 기본적 인권을 조직적으로 침해한 것으로,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원고는 가혹 행위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렸고, 수년간 생업을 이어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40여년간 억울한 누명을 쓰는 사회적 불이익과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1983년 사면받은 이후에도 가족들은 지속적인 감시와 견제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이후 감사원장과 대학교수 등을 지내며 다른 피해자들보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위자료 액수를 정했다.

한 전 감사원장은 동백림 간첩단 사건, 김지하 시인의 '오적' 필화사건 등을 변론해 '시국사건 1호 변호사'라고도 불린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는 공범으로 몰려 투옥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8∼1999년 감사원장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캠프의 통합정부자문위원단장으로 활동했다. 지난해에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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