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통계 논란 격화에도 아베 지지율 '요지부동'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요즘 일본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정부통계 부정(不正)이다.
'통계 게이트'라고 부를 만한 이 문제는 지난달 28일 정기국회 개원과 맞물려 야당이 대정부 질의를 통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을 공격하는 최고의 재료가 되면서 정치공방전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신문, 방송 등 일본 주요 언론 매체는 국회에서 통계부정을 놓고 벌어지는 공방전과 새롭게 드러나는 통계부실 문제를 연일 머리기사로 올리는 등 크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도 왠지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 통계부정 논란은 = 이번에 문제를 촉발한 통계는 '매월근로통계'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에서 고용과 복지를 담당하는 부처인 후생노동성이 작성하는 매월근로통계는 종업원 500인 이상 사업소의 경우 전수조사를 하게 돼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사태의 핵심이다.
2004년 이후 도쿄 내 500인 이상 사업소의 경우 3분의 1 정도만 직접 조사를 했다고 한다.
전수조사를 했어야 할 근로통계가 15년간 부실하게 작성된 것이다.
이 사실이 드러난 뒤 정부가 내놓는 수많은 통계를 둘러싼 부실 의혹이 꼬리를 물고 연일 불거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8일의 정기국회 개원식에서 시정연설을 통해 2차 집권기 6년여간의 경제 분야 업적을 자화자찬하면서 통계 부정 논란과 관련해선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이후 이어진 국회 출석에서도 아베 총리는 통계부정 논란에 거듭 고개를 숙였다.
이번 사태가 자칫 정권의 기반을 흔드는 악재로 발전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는 방증이었다.
사태 초기에는 부실한 통계 작성보다는 늑장 보고와 담당 장관의 부실한 사후 대응이 한층 부각되기도 했다.
매월근로통계 부실 문제가 처음 드러난 것은 작년 12월 10일이었다.
각 부처의 통계 업무를 관장하는 총무성 통계위원회가 후생노동성에 해당 통계가 부적절하게 작성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한 것이 계기였다.
그로부터 사흘 후인 12월 13일 후생노동성 담당실장이 상관인 오니시 야스유키 정책총괄관에게 보고했고, 또 1주일이 지난 12월 20일에야 네모토 다쿠미(根本匠) 후생노동상(장관)이 보고를 받았다.
문제는 그다음 날인 12월 21일 부실한 조사 내용이 포함된 작년 10월의 매월근로통계 확정치가 그대로 발표됐고, 이런 사실을 네모토 장관은 1월 8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부실통계 문제를 공개할 때까지도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베 총리가 이 문제를 처음 인지한 것은 후생노동성 사무처가 총리관저 비서를 통해 경과보고를 한 12월 28일쯤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네모토 후생노동상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해 보고하려 했을 뿐"이라며 고의로 보고를 지연시킨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야권은 정부가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통계를 가공해 아베 정권의 실적을 부풀리고, 또 문제가 드러나자 부정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번에 드러난 부실통계는 고용보험, 산재보험, 선원보험 등의 급여 산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민적 반감을 살 수 있는 핵폭탄급 이슈인 것만은 분명하다.
도쿄신문 보도에 따르면 부실 조사가 이뤄진 2004년 이후의 허술한 통계로 보험급여를 적게 받은 대상은 2천만 명에 달한다.
다만 그 액수는 크지 않아 고용보험 급여의 경우 1인당 1천400엔가량 적게 지급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용, 산재, 선원보험 등의 전체 소급 지급액은 600억엔(약 6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액수는 크지 않지만 대상자가 많은 데다가 절반가량은 거주지 이전 등으로 주소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소급 적용해 모두 지급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 아베 내각 "걱정했는데, 후유~" = 이번 통계부정 논란은 공직사회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민생 문제와도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아베 정권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최근 한 야당 의원은 "(아베 정권을) 몰아내야지"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실시된 주요 언론 매체의 여론조사에서는 의외의 결과가 나오고 있다.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통계부정 논란 후에 오히려 소폭이나마 올랐기 때문이다.
닛케이신문의 1월 25~27일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53%를 기록해 직전 조사 때보다 6%포인트나 올랐다.
또 교도통신(2월 2~3일), 마이니치신문(2월 2~3일), 요미우리신문(1월 25~27일), 아사히신문(1월 19~20일) 조사에서도 직전 조사와 비교해 1~3%포인트 지지도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요미우리신문이 1월 12~14일 전국의 자민당원 1천19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가장 평가하는 역대 총재'로 아베를 거론한 사람이 24%로 가장 많았다는 결과까지 보도됐다.
이런 추세는 닛케이신문의 최근 조사에서 정부 통계를 신뢰할 수 없게 됐다는 응답률이 79%에 달할 정도로 높았고, 또 교도통신 조사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이 충분치 않다는 응답률이 83%를 넘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정부에 대한 비판 목소리는 높지만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異常) 현상에 대해 닛케이신문은 트위터 같은 SNS 매체와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야당이 집중적으로 거론하면서 이슈 띄우기에 나선 통계부정 논란이 SNS에서는 아베 정권의 약점을 부각하는 핫이슈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것이 아베 내각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4일 오후 9~10시 사이의 트위터에 '통계'란 단어가 포함된 글이 많았지만 이 가운데 야당이 '거짓 아베노믹스'로 규정한 '실질임금'이 거론된 글은 48위(2일)를 기록한 뒤 100위 밑(3, 4일)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닛케이는 정부 통계 문제가 일반인들의 피부에 잘 와닿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누가 부정을 저질러 이익을 취했는지 등이 불분명해 스캔들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정치심리학자인 가와카미 가즈히사 국제의료복지대 교수는 부실한 통계의 영향을 받는 액수나 대상이 '사라진 연금' 기록 문제 때와 비교해 적은 점을 아베 내각 지지율에 악재가 되지 않는 배경으로 설명했다.
그는 "연금 자체가 없어진다는 두려움을 안겼던 연금기록 문제와 비교할 때 이번 통계문제는 보험 급여 감소로 이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2007년 제1차 아베 내각의 몰락을 가져온 '사라진 연금' 사태는 당시 일본 정부가 5천만건에 달하는 국민연금 납부기록을 분실한 사건이다. 이는 국민적 분노를 야기해 1기 아베 정권이 몰락하고 자민당이 민주당으로 정권을 넘겨준 계기가 됐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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