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INF 탈퇴 '강대강'…군비경쟁 우려속 '6개월' 타협여지
미국 INF 중단 경고에 푸틴 "우리도 참여 중단"…美, 탈퇴방침 공식 통보
中, "우리 겨냥한 것" 우려속 강력 반발…나토 등 유럽, 美지지속 "파국 피해야"
미러 '뉴스타트 협정'도 파기수순 우려…6개월 시한 내 협상타결 주목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미국과 러시아가 1980년대 냉전종식에 기여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잇따라 탈퇴하는 '초강수를 두고 나서면서 국제 안보질서가 크게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INF 조약의 이행 중단을 선언하자 러시아가 똑같은 조치를 취하겠다고 맞대응하고, 이에 미국이 다시 INF 탈퇴 방침을 러시아에 공식 통보하면서, 양국을 중심으로 국제적 군축 체제를 이끌어온 INF는 사실상 무력화됐다.
이에 따라 냉전시대 미·소(蘇)간에 첨예하게 전개돼온 군비경쟁이 다시 부활하며 국제사회 전반적으로 강대국의 힘겨루기에 기반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미·러 간의 또다른 군축 합의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 스타트·New START)도 파기 수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2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성명을 통해 INF 탈퇴를 공식화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성명에서 "관례적인 국제법에 따라 미국은 러시아의 중대한 위반에 대한 대응으로 오늘 INF 조약에 따른 의무를 중단했다"며 "미국은 오늘 러시아와 다른 조약 당사국들에 미국이 6개월 이내에 INF 조약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공식 통보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러시아의 계속된 조약 불이행 문제가 미국의 최우선 이익을 위태롭게 했고, 러시아가 조약을 공공연히 위반하는 동안 미국도 더는 이 조약에 의해 제약받을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며 러시아에 책임을 돌렸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6개월 내에 INF 위반 사례인 9M729 미사일과 발사대, 관련 장치를 모두 제거함으로써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조약 준수를 하지 않는다면 INF는 종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공식 성명은 같은 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맞불' 방침이 발표된 직후에 나왔다.
이에 앞서 푸틴 대통령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의 면담에서 "우리의 답은 대칭적으로 될 것이다. 미국 파트너들이 조약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혔고 이에 우리도 참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똑같이 INF 이행을 중단하고 6개월 후 탈퇴하겠다는 뜻을 확인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두 부처(국방부와 외무부)는 앞으로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떤 협상도 먼저 제안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면서 "우리 파트너들이 이 중요한 문제와 관련한 동등하고 내실 있는 대화를 진행할 만큼 성숙할 때까지 기다려라"고 지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특히 러시아의 수상 발사 대함미사일 '칼리브르'의 지상 발사형 버전을 만들고, 중거리 극초음속 지상 발사 미사일 개발에 착수하겠다는 쇼이구 장관의 제안을 지지해 이번 사태가 강대국들의 신무기 경쟁 레이스로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군비 경쟁을 억제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의 첫 결실로 평가받는 INF는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한 조약이다. 양국은 조약이 발효된 후 3년내로 사정거리 500~5500km의 중·단거리 핵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하고, 1991년 6월까지 중·단거리 미사일 2692기를 없앴다.
그러나 이후 러시아가 단거리 탄도미사일들을 개발하고 미국이 2000년대 들어 유럽 미사일방어 체계를 구축하면서 양국 사이에는 서로 'INF 위반'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미국은 지난 2017년 초 러시아가 9M729 순항미사일(사거리 2천∼5천㎞)을 실전 배치한 것이 INF 조약 위반이라고 비판하며 사실상 INF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이처럼 INF 파기가 기정사실화되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비롯한 미국의 유럽 내 동맹들은 러시아가 먼저 조약을 위반했다는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파국 만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우리가 선견지명을 갖고 행동하지 않으면 공상과학(SF) 영화가 곧 치명적인 현실이 될 것"이라며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을 포함하는 다자간 국제 군축 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일이 오는 3월 베를린에서 군축 콘퍼런스를 주최할 예정이라고도 전했다. 이는 중국을 다자간 군축 조약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INF 조약에 가입해있지 않은 중국은 미국의 INF 탈퇴 공식화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이 INF 탈퇴를 계기로 중국을 겨냥해 태평양 역내에서 핵·미사일 전력을 크게 증강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다.
중국은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INF를 다변화하는 것은 정치, 군사, 법률 등 복잡한 문제가 있고 많은 국가가 관련돼 있다"면서 "중국은 조약의 다변화에 반대한다"고 맞섰다.
겅 대변인은 "미국의 일방적인 탈퇴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대화를 통한 해법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미국 외교전문잡지인 '포린 폴리시'는 1일(현지시간) "미국이 중국의 커지는 중거리 미사일 전력에 대응하는 역량 구축에 나설 것"이라며 "여기에는 태평양에 배치되고 미 육군이 운용하는 이동식·지상 발사 탄도미사일에 포함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고위관리는 이 잡지에 "중국과 이란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만 조약에 묶여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은 중국이 서태평양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아무런 제약 없이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지만, 미국은 INF로 인해 신무기 배치를 제약받고 있다는 판단 하에서 INF 탈퇴를 검토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INF 탈퇴를 계기로 미국과 러시아가 지난 2010년 체결한 뉴스타트 협정도 파기 수순에 들어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간 핵탄두 및 탄도미사일 배치를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협정은 2021년 만료될 예정으로, 러시아는 연장을 희망하고 있으나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을 이끄는 '슈퍼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INF를 둘러싼 미러 양국의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는 모양새지만 양측 모두 대화 여지를 남겨두고 있어 6개월 안에 극적인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푸틴 대통령은 국방·외무장관 면담에서 "협상을 위한 문은 열려 있다"며 미국이 먼저 중·단거리 미사일을 유럽 등에 배치하지 않는 한 러시아가 먼저 유사한 무기를 배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폼페이오 장관도 INF 탈퇴를 예고하는 성명에서 군축 협상과 관련해 러시아와 외교적 관여에 나설 준비가 돼 있음을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가 2017년 초 9M729 순항미사일(사거리 2천∼5천㎞)을 실전 배치한 것이 사거리 500∼1천㎞의 단거리와 1천∼5천500㎞의 중거리 지상 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시험, 실전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INF 조약 위반이라며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를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INF 탈퇴 의사를 밝혔으나, 러시아는 이 미사일의 사거리가 480㎞여서 조약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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