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해도, 방치해도 문제…유기견 생기는 구조 자체 없애야"

입력 2019-02-03 09:31
"구조해도, 방치해도 문제…유기견 생기는 구조 자체 없애야"

'동물구조119' 유기견 구조 동행취재…달동네 유기견들 '죽거나 굶주리거나'

임영기 대표 "모두 구조하고 싶어도 비용·여건 허락 안 해" 토로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마지막 한 마리까지 구조할 거예요. 며칠이 걸리든 간에."

설 연휴 첫날인 2일 아침,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노원구 중계동 백사(104)마을에서 만난 임영기 동물구조119 대표는 이날 막바지 유기견 구조를 준비하고 있었다.

동물구조119는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 입양센터 등과 협력해 지난달 27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백사마을 폐가와 야산을 떠돌던 유기견 26마리를 구조했다.

이날 구조할 예정인 유기견은 마지막으로 남은 한 마리였다. 임 대표는 안전한 구조를 위해 직접 설계한 상자 모양의 포획틀에 먹이를 놓은 뒤, 근처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임 대표는 "여태껏 구조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녀석이라 쉽게 포획틀로 들어오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경계심이 강한 개들은 구조하는 데 며칠씩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2017년부터 시민단체 '104동행'과 유기견 20여 마리를 구조해온 김성호 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이날 구조에 동참했다.

2017년 5월 서울시와 동물권행동단체 카라(KARA)의 의뢰로 백사마을 900여 가구의 반려동물 관리 실태를 전수조사했던 김 교수는 어느 집에서 무슨 개를 키웠는지, 언제 중성화 수술을 받았는지 훤히 꿰고 있었다.

김 교수는 "지난해 9월 전후로 중성화되지 않은 유기견들이 자기들끼리 번식해 급격히 늘어났다"며 "서울시나 구청의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동물구조119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도움을 청했다"고 말했다.

최근 동물권단체 '케어'의 안락사 의혹이 제기되며 유기견 구조에 어려움을 겪는 게 사실이다. 케어가 구조한 유기견 수백 마리를 보살핌이나 입양이 아닌 임의로 안락사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유기견 구조 자체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마저 나온다.

하지만 유기견 구조는 동물권 보호 차원뿐만 아니라 버려진 동물로부터 있을지 모를 사람에 대한 위협을 예방하는 일이기도 하다. 임 대표와 김 교수가 논란 속에도 백사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유기견 구조에 나선 이유이기도 했다.

두 사람과 함께 백사마을을 돌아다니는 와중에 한 주민이 도움을 요청했다.

"여기 상황이 심각해요, 얼른 와 주셔야겠어요."

이 주민이 '동네 개들이 자주 드나든다'고 일러 준 폐가의 녹슨 철문을 열자 눈앞에 처참한 상황이 펼쳐졌다.

버려진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흰색 강아지 두 마리가 추위에 몸을 떨며 웅크리고 있었다. 옆에는 초췌한 모습의 다른 개 두 마리가 김 교수와 기자를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또 다른 유기견은 강아지 때 채워진 목줄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마당 한쪽에는 죽은 지 오래된 개의 사체가 방치돼 있었다



포획틀을 점검하러 갔다 연락을 받고 황급히 달려온 임 대표는 "지옥이네, 지옥이야"라고 탄식했다.

임 대표가 사료와 물을 내려놓자 굶주린 유기견들은 금방 경계를 풀고 다가와 허기를 채웠다.

임 대표와 김 교수는 이날 발견된 다섯 마리의 유기견을 어떻게 구조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건강 문제가 우려되는 새끼 두 마리만 먼저 구조하기로 결정했다.

임 대표는 "마음 같아서는 5마리 모두 지금 구조하고 싶지만, 입양기관 여건과 진료·중성화 비용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일단 나머지는 먹이만 챙겨주고 이후에 다시 찾아오겠다"며 안타까워했다.

폐가에서 뜻밖의 구조가 이뤄지던 사이, 당초 포획하기로 했던 유기견은 포획틀 안까지 들어갔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도망쳐 결국 포획에는 실패했다. 임 대표는 "활동반경을 볼 때 오늘 발견한 폐가에 드나드는 개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구조된 유기견들은 모두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고양시 유기동물 거리입양 캠페인(고유거)'과 연계해 검진과 치료, 사회화를 거쳐 입양될 예정이다. 앞서 구조된 26마리도 '고유거'로 보내졌다.

김 교수는 "대한민국에 이런 현장이 수십, 수백 군데는 있을 것"이라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유기견 보호 관련 예산을 늘리려고 해도 '왜 사람에 쓰기도 아까운 예산을 동물구조 지원에 쓰느냐'며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김 교수는 "그렇다고 가만히 두거나 안락사를 시킨다 해도 사회적 비용이 드는 건 마찬가지"라며 "정부가 동물구조·중성화 수술 지원을 늘리고, 무분별한 반려동물 거래를 규제하는 등 유기견이 발생하는 구조 자체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jujuk@yn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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