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미국에 '핵무기·ICBM 폐기' 카드도 보여줬나(종합)
'北 플루토늄-우라늄시설 폐기 약속+α' 비건 발언에 해석분분
초기조치 넘어 핵무기·ICBM폐기 포함한 최종목표지점 합의여부 관심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한미 외교당국이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를 거듭 강조하면서 이달말 열릴 전망인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양측이 어느 수준까지 합의를 이뤄낼지 관심이 쏠린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1월31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 대학 월터 쇼렌스틴 아·태연구소가 주최한 북한 관련 강연 및 문답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 당시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의 폐기 및 파기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북미협상 과정을 잘 아는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같은 날 북한과 미국이 2차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협의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이에 따른 상응조치를 우선 의제로 다룰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에 비춰 일단 양측은 북한이 거듭 약속한 '영변 핵시설' 카드를 중심으로 북미 간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정상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한 바 있다.
평북 영변은 북한 핵무력의 핵심적이고도 상징적인 장소다.
이 지역에는 핵무기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흑연감속로(원자로)와 핵연료봉 제조시설 및 재처리시설, 핵연료 저장시설과 폐기물 보관고,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 시설 등이 밀집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과거 1차 북핵 위기 이후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북한은 핵 개발을 포기하기로 하고 핵심 시설인 영변 5㎿급 원자로의 동결 및 해체를 약속했고, 2002년 제2차 북핵 위기 발발로 제네바합의가 붕괴되기 전까지 동결을 유지했다.
또 2차 북핵 위기 때도 북핵 6자회담을 통한 2007년 2·13합의와 10·3합의를 통해 5㎿급 원자로 및 관련 시설에 대한 폐쇄와 불능화 약속이 나왔고 일부 이행도 됐다.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영변 핵시설이 '전부'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 생산기지로서의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 안팎의 평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1일 "영변 핵단지는 북핵의 상징으로, 이의 폐기는 '현재핵'에 대한 조치"라며 "사찰·검증에 의한 폐기로 간다면 완전한 비핵화의 상당 부분을 이루는, 미국이 바라는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에 한단계 다가가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조치의 하나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결국 관건은 과거 도돌이표를 그려온 협상과 달리 이번에는 영변 핵시설에 대해 얼마나 빠르고 구체적으로 합의와 조치가 이뤄질 수 있느냐로 보인다.
과거 핵시설 동결·불능화 등 여러 단계를 밟아나가는 과정에서 검증 등이 문제가 되면서 협상이 교착되거나 어그러졌던 만큼, 이번에는 북미 양 정상의 결단에 따라 비핵화 조치도 '가동중단→폐기'식으로 속전속결로 이뤄지고, 그에 맞춰 미국의 상응조치도 얼마나 파격성과 불가역성을 담보하는 형태로 이뤄질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최대 난제인 핵 검증과 연결되는 핵 신고 시기에 대해 유연성을 보이고 있는 만큼 북한은 영변 폐기의 과감하고 신속한 이행으로 화답할 가능성에 외교가는 주목하고 있다.
이와 함께 비건 대표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이 플루토늄 시설과 함께 '우라늄 농축시설', 즉 우라늄 농축공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되는 시설의 폐기도 언급했다는 점이 주목되는 지점이다.
고농축우라늄(HEU)은 과거 제네바 합의의 붕괴로 이어진 중요 사안이지만, 이후 6자회담에서는 북한의 시인·부인 논란 속에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우라늄농축시설은 플루토늄 프로그램을 능가하는 북한 핵물질 생산의 '주력'이 됐고, 기술적으로도 진보된 형태인데다 감시도 더 어려운 만큼 북한 비핵화 조치 대상에 있어서 불가결한 요소인 것으로 평가된다.
2010년 미국 스탠퍼드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방북 당시에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 분리기 1천여기를 갖춘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을 목격했는데 이후 2013년 기준 건물 규모가 2배로 증가한 것이 포착된 바 있다.
다만 영변 핵시설과 함께 '강선'으로 알려진 영변 밖 우라늄농축시설의 폐기 문제를 어떻게 정리하느냐도 북미 협상에서 쟁점이 될 수 있다. 영변 밖의 비밀 우라늄농축시설까지 폐기대상에 넣어야 북한 핵물질 생산 중단의 완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에 집중하더라도, 영변 밖 우라늄농축 시설의 존재와 폐기 계획 등에 대해 북미가 인식을 같이 하느냐는 향후 협상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일단 비건 대표는 강연에서 북측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전체의 폐기를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플루토늄 및 농축우라늄 생산 시설의 폐기 뿐 아니라 '플러스 알파'에 대한 약속이 있었다는 비건 대표의 발언도 관심을 모은다.
비건 대표는 "북한은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 시설 해체 및 파괴를 약속하면서 '그리고 더'(and more)라는 말을 더했다"며 "이는 중요한 말이다. 왜냐하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이들 시설 이상으로 할 게 훨씬 더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핵물질 생산시설 뿐 아니라 북한의 '보유핵'에 해당하는 핵무기, 핵물질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미국의 상응조치가 있을 경우 언젠가 폐기할 것이라는 점을 북측이 약속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결국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 합의문에 영변 핵시설 폐기를 중심으로 한 '초기단계 비핵화 조치'의 상세 이행 계획과 함께 다음단계에 본격 협상할 북한의 '보유핵' 처리에 대한 '약속'이 포함될지가 외교가의 관심을 모으게 됐다.
hapyr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