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美 대이란 제재 우회 금융회사 '인스텍스' 발족(종합)
유럽-이란 교역 전담 '물물교환' 중개…핵합의 유지 조건 일단 충족
유럽 기업 참여 여부 관건…미 "최대 압박 영향 없을 것"
(브뤼셀·테헤란=연합뉴스) 김병수 강훈상 특파원 = 프랑스와 독일, 영국은 31일(현지시간)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부활에 맞서 유럽기업이 미국의 제재를 피해 합법적으로 이란과 거래하도록 하는 특수목적법인(SPV)을 발족했다고 밝혔다.
'인스텍스'(INSTEX·Instrument In Support Of Trade Exchanges·무역거래 지원 수단)로 명명된 SPV의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두고, 독일 은행 출신 인사가 운영을 맡기로 했으며 영국은 감사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 3개국이 일단 이 SPV의 지분을 삼분하고 향후 다른 유럽국가의 참여를 도모할 계획이다.
제재로 이란 경제를 고사시키겠다는 미국이 이 SPV 가동을 반대하면서 유럽을 압박하는 점을 고려해 유럽 주요국인 이들 3개국이 부담을 나눠 진 셈이다.
이 회사는 자본금 3천 유로 규모로 프랑스에 법인 설립 신고를 마쳤다.
인스텍스가 실제 가동되기까지는 1∼2개얼 간 법적, 기술적 절차가 더 마련돼야 하지만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유지하려면 경제적 이득을 유럽이 보장하라는 이란의 요구가 일단 수용됐다.
이로써 유럽과 이란은 미국의 제재 대상인 달러화 결제를 거치지 않고 이 법인의 중개로 이란산 원유·가스와 유럽산 물품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교역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교역 품목은 제재 대상이 아닌 식료품, 의약품 등 인도적 분야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과 유럽연합(EU)은 2015년 국제사회와 이란이 체결한 핵합의에서 지난해 미국이 일방 탈퇴한 뒤 대이란 제재를 부활, 핵합의가 위기에 처하자 이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왔다.
이들 국가는 유럽기업들이 미국의 제재를 받지 않고 이란과 거래하도록 하기 위해 SPV를 구상하게 됐으며 당초 작년 11월에 출범할 계획이었으나 계속 지연됐다.
EU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대표는 이날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비공식 EU 외교장관회의에 앞서 SPV의 출범을 환영했다.
모게리니 대표는 "SPV의 설립은 이란과의 핵 합의에서 예고한 대로 이란과 합법적인 거래를 허용하는 기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디디에 레인더스 벨기에 외교장관은 "우리는 이란과의 핵 합의에서 약속한 것이 제대로 실행되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선택하는 것은 기업들의 몫"이라고 밝혔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31일 트위터에 "미국의 불법적 제재 복원 뒤 이란의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핵합의를 구하려는 유럽 3개국이 많이 늦었지만 첫 단계를 이행했다. 이를 환영한다"는 글을 올렸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차관은 이날 자국 국영방송과 인터뷰에서 "다음 단계는 유럽 외 다른 국가도 인스텍스를 통해 이란과 교역하도록 확대하는 일"이라며 "제재 대상 품목을 포함해 모든 상품을 수출입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란 정부와 중앙은행은 테헤란에 이란 기업이 자국화(리알화)로 유럽 회사와 거래할 수 있도록 인스텍스와 같은 방식의 금융전담 회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인스텍스의 성공 여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적대적 대이란 제재를 무릅쓰고 유럽 민간 기업이 얼마나 많이 이란과 거래에 참여하느냐에 달렸다.
아락치 차관의 인터뷰처럼 이란은 유럽과 거의 모든 분야의 무역을 기대하지만, 유럽 측에서는 미국의 제재에 최대한 저촉되지 않는 분야에 한정할 수 있어서다.
미 국무부는 "그 SPV가 우리의 (대이란) 최대 경제 압박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은 "SPV의 법인 등록은 큰 진전이다"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이란의 적대, 교란 행위(탄도미사일 개발, 테러 지원)를 다루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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