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 최익현 선생 일제 압송도 문화재 됐다(종합)
충남도, 최익현·박장원 초상·광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등 9건 문화재 지정
(홍성=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반발해 의병부대를 일으켰다 일제에 압송된 면암 최익현(1833∼1906) 선생의 그림이 문화재로 지정됐다.
충남도는 30일 '청양 최익현 압송도'와 '최익현 초상', '천안 광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천안 박장원 초상 및 함', '공주 동불사 목조석가여래좌상', '서천 한산이씨 계미보책판' 2건, '홍성 상하리 마애보살입상', '예산 향천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등 9건을 도 지정 문화재(유형문화재 8건·문화재 자료 1건)로 지정 고시했다고 밝혔다.
최익현 압송도는 1910∼1930년대 면암 추모사업의 하나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화로, 조선시대 기록화 제작 방식을 현대화한 작품이다.
가로 120.5㎝·세로 63.3㎝의 비단에 그린 이 그림은 최익현 선생이 일제에 의해 서울에서 부산을 거쳐 대마도로 압송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담았다.
최익현 압송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면암집'에 수록된 인물과 연계돼 역사적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최익현 압송도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최익현 초상은 당대 최고 초상화가인 채용신의 작품으로, 관복을 입은 전신상 가운데 비교적 초기의 초상화 방식이 적용됐다.
1833년 경기 포천에서 태어난 최익현 선생은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 이조정량 등을 지냈으며, 충남 청양으로 낙향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반발해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모았다.
이어 의병장 활동으로 체포돼 일제에 의해 대마도로 유배된 선생은 단식 후유증 등으로 1906년 순국한 뒤 예산 광시면에 안장됐다.
도 관계자는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대한제국 시기 대표적인 항일지사인 면암 선생과 관련한 유물들을 문화재로 지정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박장원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박장원 초상 및 함은 박장원을 그린 초상과 그 초상을 보관하는 함이다.
박장원은 어사 박문수의 증조부로, 이조판서·한성부판윤 등을 지냈으며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실록' 편찬에도 참여했다.
다른 초상화와 달리 관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에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을 담은 전신의좌상(全身椅坐像)으로 그려졌으며, 표제와 자찬문 등을 갖추고 있어 조선 후기 초상화의 형식을 확인할 수 있다.
천안 광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광덕사 대웅전이 화재로 전소된 뒤 1728년 승려 취단과 명철 등이 제작했다.
석가불, 약사불, 아미타불 등 삼존으로 이뤄져 있으며, 조선 후기 불상 양식을 따르면서도 타원형의 얼굴에 양감이 없는 평면적인 이목구비를 갖춰 친근한 인상을 표현해 내고 있다.
제작연대와 제작자가 분명해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고 도는 설명했다.
jyou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