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핵합의 존폐달린 금융회사…"곧된다"는 유럽, 압박하는 이란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의 존폐가 달린 특수목적법인(SPV)의 가동이 임박한 모양새다.
이 법인은 유럽과 이란의 교역에서 발생하는 금융 거래를 전담하는 회사로, 미국을 거치지 않고 양측의 '직거래'를 가능케 하는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다.
이란 핵합의 성사의 주역인 유럽연합(EU)은 지난해 5월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하자 이를 유지하기 위해 이란에 이 금융회사를 설립하겠다고 약속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주기적으로 이란의 핵시설을 사찰해 분기별로 핵합의에서 정한 조건을 지켰다는 보고서를 낸 상황에서 EU는 이란의 핵합의 '맞탈퇴'를 막아야만 했다.
이란이 핵합의를 탈퇴한다는 것은 우라늄 고농축에 이은 핵무기 제조 물질 생산을 즉시 재개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란은 핵합의 탈퇴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EU와 핵합의 서명국 영국, 프랑스, 독일에 핵합의 준수로 이란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 즉 원유 수출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SPV가 제대로 가동된다면 양측이 제한적이지만 계속 교역할 수 있어 핵합의가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 조성되겠지만, 결국 무산된다면 이란도 더는 핵합의를 지킬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EU가 먼저 제안한 이 SPV는 그러나 출범이 계속 미뤄졌다.
애초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완전히 복원한 지난해 11월 초가 암묵적인 시한이었으나 연말로 미뤄지더니 해를 넘겨 아직도 가동되지 않았다.
이란은 SPV가 실패한다면 핵합의를 탈퇴할 수 있다는 신호를 EU에 보내면서 조속히 가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 사이 미국은 SPV를 유치할 후보국으로 거론된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를 압박했다.
EU와 이란 측에서 나오는 보도를 종합하면 SPV가 출범을 위한 막바지 실무 조율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28일 "SPV가 아직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계획을 곧 이행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며 "SPV가 일단 출범하면, 미국의 제재 대상이 아닌 영역에서(유럽과 이란 사이의) 재정 흐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SPV와 관련해 EU 차원이 아닌 특정 유럽 국가의 장관이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현황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란은 그런데도 압박을 늦추지 않았다.
SPV 실무 협상을 담당하는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 차관은 28일 빈에서 아마노 유키야 IAEA 사무총장을 만나 "유럽이 SPV를 설립하겠다고 한 지 8개월이 지났다"며 "유럽의 어려움과 미국의 협박을 이해하지만 8개월이면 SPV를 가동하고도 남는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복원으로 양측의 교역 규모는 현저히 줄었다.
EU 공식 통계기구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한 달 양측의 교역 규모는 6억8천만 유로로 전년 같은 달보다 66% 감소했다.
최근 핵합의 서명국인 프랑스와 독일이 이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테러 지원 등을 이유로 제재 부과를 언급하면서 양측의 공방이 가열되는 점도 SPV에 불안 요소다.
SPV 출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돈세탁·테러 지원자금 방지 법안이 이란 내 보수 세력의 반발에 부딪혀 헌법수호위원회(상원에 해당하는 이란의 헌법기구)에 계류 중인 것도 부정적인 변수다.
SPV가 출범한다고 해도 미국의 '제3자 제재'(세컨더리 보이콧)를 우려한 유럽 기업이 어느 정도 이란과 교역에 참여할지도 미지수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