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전 총리의 경고…"EU, 난민문제 못풀면 해체될 것"
레타 "주류 정치인, 유럽의회 선거 앞두고 난민문제 해법 제시해야"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오는 5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유럽연합(EU)의 주류 정당이 난민과 이주 문제에 대한 대중의 우려를 해소하지 못하면 EU가 해체될 것이라고 이탈리아 전 총리가 경고했다.
엔리코 레타 전 총리는 28일(현지시간) EU 본부가 위치한 브뤼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주류 정치인들이 향후 몇개월 동안 난민 관련 논쟁의 주도권을 EU에 저항하는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 세력에 넘겨줘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레타 전 총리는 그러면서 "EU가 난민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27차례 더 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난민에 대한 광범위한 반대가 2016년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의 통과, 작년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부의 탄생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에서 우파의 부상 등 다른 나라의 정치 지형도 흔들었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중도좌파 정당 민주당(PD) 소속으로 2013년 4월부터 이듬 해 2월까지 총리를 지낸 그는 현재는 브뤼셀에 있는 자크 들로르 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레타 전 총리는 "난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친유럽적인 목소리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며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탈리아의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나 프랑스의 극우정당 지도자인 마린 르펜,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와 같은 반난민 성향의 포퓰리스트들의 손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EU가 회원국 간 단합을 촉진하려면 난민이 처음 상륙하는 국가가 망명 절차를 책임지는 현행 더블린 협약의 개정을 추진하는 방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5년에 아프리카와 중동 등지에서 무려 100만명이 넘는 이주민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물밀듯 밀려들며 난민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자, EU는 난민 유입의 '관문'인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지중해 연안국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더블린 조약을 개정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난민 분산 수용에 미온적인 동유럽 국가 등 회원국 상당수의 반발에 부딪혀 개정안 도출은 요원한 상황이다.
레타는 이와 관련, "회원국 전체가 아닌, 난민 유입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이 문제를 개선하길 원하는 EU 국가들끼리만 협약을 맺어 난민 문제를 풀기 위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더블린 협약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편, 레타의 이 같은 발언은 지중해에서 구조된 난민들을 태운 국제구호단체의 구조선이 유럽 각국의 수용 거부 속에 열흘 째 상륙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독일 비정부기구(NGO) '씨 워치'는 지난 19일 리비아 연안에서 난민, 이주자 등 47명을 구조했으나, 몰타, 이탈리아뿐 아니라 배가 등록된 네덜란드 등이 입항을 모조리 불허함에 따라 여전히 난민을 육지에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이 배는 현재는 악천후를 피해 시칠리아 섬 동남부의 시라쿠사 항구 근해에 임시 정박 허가를 받고 머물고 있다.
2015년 이후 지중해 난민들을 대부분 받아들였던 이탈리아는 작년 6월 반난민 정책을 앞세운 포퓰리즘 정부가 집권하면서 지중해 난민선의 자국 입항을 거부하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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