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예타 면제', 공론화 통해 명확한 기준·규정 마련해야
(서울=연합뉴스) 대규모 공공투자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면제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총사업비 24조1천억원 규모의 23개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한다고 29일 밝혔다. 예타 면제는 수도권과 경남북 내륙을 연결하는 김천~거제 간 남북내륙철도 건설, 경부·호남고속철이 합류하고 KTX·SRT가 교차하는 구간인 평택~오송 복복선화 등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사업이 포함됐다. 대규모 예타 면제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이후 10년 만이다.
국가재정법은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이고 국가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공공사업은 예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제·효율성과 재원조달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사업 추진의 적합성 여부를 따져보자는 게 이법의 취지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 예타를 '국가재정의 문지기'라고 부른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예타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있으나 역대 정부는 이를 매우 제한적으로 운용해왔다.
예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강화하자던 민주당이 집권 후 오히려 대규모 공공사업의 예타 면제를 추진하면서 논란의 불씨를 댕겼다. 민주당은 2015년 발간한 민주정책연구원 보고서에서 "예타는 세출 누수 방지, 재정 건전성 제고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재정 관리 수단"이라며 "예타 완화나 회피는 예산 낭비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기회를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야당과 시민단체가 예타 면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는 것은 당연하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우호적인 시민단체마저 '선심성 퍼주기'라고 각을 세웠다. 야당의 지적은 더 거칠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는 오로지 정권의 이익 그리고 총선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날을 세웠다. '2016 총선' 전 예타 강화를 외치던 민주당이 집권하자 '2020 총선'을 앞두고 예타 면제를 외치고 있으니 이런 말이 나올법하다.
정부·여당이 국민을 설득하려면 예타를 생략한 사업을 꼼꼼하게 짚어가면서 차질없이 추진해 국가균형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예타 면제의 취지를 살리는 길뿐이다. 이번에 예타가 면제된 23개 사업은 2029년까지 연차적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부실사업으로 귀결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차기 정부와 미래세대의 몫으로 남게 된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현 정부와 여당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참에 1999년 도입된 예타를 국가발전 추세에 따라 그 목적에 맞게 제도 자체를 손질해야 한다. 예타 시행 대상과 규모 등도 되짚어 봐야 한다. 특히 예타 면제에 대해서는 공론화 과정을 밟아 명확한 기준과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균형발전,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 추진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예타 면제의 순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경제성과 효율성, 재원조달계획만 따지다 보면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은 공공인프라 사업에서 소외되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도에 따라 '이벤트성'으로 추진되는 예타 면제를 막기 위해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통해 이를 제도화 또는 정례화하자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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