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모독' 자카르타 前주지사, 무슬림 약혼녀 개종으로 또 논란

입력 2019-01-29 12:27
'신성모독' 자카르타 前주지사, 무슬림 약혼녀 개종으로 또 논란

"무슬림 과격파, 4월 차기 대선 앞두고 의도적 논란 조장" 의혹도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신성 모독죄로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인도네시아의 중국계 기독교도 출신 정치인이 이번에는 무슬림이었던 약혼녀를 기독교로 개종시켰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29일 쿰파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24일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바수키 차하야 푸르나마(52·일명 아혹) 전 자카르타 주지사는 내달 15일 전처의 보좌관이었던 푸풋 나스티티 데비(21)와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혹 전 주지사는 작년 1월 전처인 베로니카 탄(42)과 20년 만에 이혼했다.

무슬림이었던 푸풋은 아혹 전 주지사와 결혼하기 위해 기독교도로 개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두 사람이 교회에서 함께 성가를 부르며 미사를 올리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선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남녀의 결혼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처럼 어느 한쪽이 개종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2억6천만 인구의 87%가 이슬람을 믿는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국이면서도 가톨릭, 개신교, 불교, 유교, 힌두교까지 6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리주의 성향의 무슬림 과격파들은 아혹 전 주지사가 무슬림 여성에게 배교(背敎)를 저지르도록 했다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는 무슬림이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을 심각한 범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선 아혹 전 주지사가 신성 모독죄로 복역한 데 대한 보복으로 무슬림 여성을 배교시켰다는 비난까지 제기됐다.

조코 위도도(일명 조코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아혹 전 주지사는 2016년 9월 이슬람 경전인 쿠란이 유대인과 기독교도를 지도자로 삼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말에 "해당 구절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이들에게 속았다면 내게 투표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가 신성모독 논란에 휘말렸다.

무슬림 과격파는 자카르타 시내에서 10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잇따라 열었고, 결국 아혹 전 주지사는 이듬해 4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해 재선에 실패한 뒤 신성모독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의 실형에 처했다.

무슬림 과격파가 증거를 조작해 마녀사냥을 벌인 정황이 뚜렷한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온건하고 관용적인 이슬람 국가로 분류되던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 보수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여겨진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현지에선 무슬림 과격파들이 개인의 사생활까지 간섭하려 드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언론인 출신 예술인인 수지워 테조는 트위터를 통해 "나는 아혹의 팬이 아니다. 하지만 아혹의 약혼녀나, 결혼을 위해 개종하는 다른 이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올해 4월 차기 대선에서 종교적으로 중도 성향인 조코위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하려는 무슬림 과격파가 의도적으로 논란을 부풀리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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