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김샜다…글로벌 아닌 '슬로벌라이제이션' 시대 개막"
이코노미스트 분석…다국적 교역·투자·금융 둔화세 확연
트럼프 보호주의도 한몫…"더 불안하고 인색한 세상 펼쳐질 것"
(서울=연합뉴스) 김치연 기자 = 급속도로 진행되던 세계화가 이제 정체 수준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나왔다.
재화의 이동비용이 더는 하락하지 않고 다국적기업이 고전하며 서비스 산업이 더 강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9일 '세계화는 김 샜다'는 제목의 최신호 커버스토리를 통해 세계화가 느릿느릿한 새 시대를 맞이했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국경을 넘나드는 각종 활동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따져 세계화의 둔화를 설명했다.
이 기준으로 볼 때 재화·서비스 무역, 중개무역, 총자본회전, 다국적기업의 이익, 해외직접투자, 해외 은행대출 등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재화·서비스 교역량은 2008년 61%에서 2018년 58%로 떨어졌고, 같은 기간 중개무역량도 19%에서 17%로 낮아졌다.
국경을 넘는 은행대출은 2006년 60%이던 것이 작년 36%로, 해외직접투자는 2007년 3.5%에서 작년 1.3%로, 다국적기업들의 이익이 전체 기업의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8년 33%에서 작년 31%로 각각 하락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네덜란드 저술가 아지드 바카스의 용어를 빌려 세계화의 이런 둔화를 종전 용어인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sation·세계화)에 빗대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sation)으로 불렀다.
이 잡지는 상품을 선박과 항공기로 나르던 비용이 줄면서 교역량이 급증하고 전화통화료가 싸지며 금융체계가 개방되고 관세가 줄어들던 1990∼2010년을 세계화의 황금기로 꼽았다.
그러면서 그 뒤로 10년간 세계화가 빛의 속도에서 달팽이 수준으로 느려졌다고 평가했다.
재화의 이동비용이 더는 하락하지 않는다는 점, 다국적기업이 금융시장 변동성 때문에 손실을 보고 현지 기업에 밀린다는 점, 경제활동에서 국경을 넘기 어려운 서비스가 더 부각되고 있다는 점, 중국 제조업의 자급자족화로 부품수입이 줄었다는 점 등을 슬로벌라이제이션의 이유로 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화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무역 전쟁 때문에 더 위태로워졌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은 글로벌 시장에서 투자자와 회사가 국적과 관계없이 평등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원칙을 깨뜨렸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기업들의 장기 투자 계획을 바꿔놓는다는 데 있다는 경고도 뒤따랐다.
기업들이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거나 법규가 불안정한 나라에는 투자를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중국 기업이 미국과 유럽에 한 투자는 73% 급락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슬로벌라이제이션이 세계화의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또다시 새로운 긴장을 만들어낼 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금융 정책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역내 무역 방식과 글로벌 금융 시스템 간 긴장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슬로벌라이제이션 하에서도 기업들은 각자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장소에서 비숙련 노동자를 고용할 것이며 기후변화, 이민, 탈세 등 국제 사회의 공조가 필요한 문제는 더욱 해결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슬로벌라이제이션은 세계화보다 더 인색하고 덜 안정적일 것"이라며 "결국 불만을 가져다줄 뿐"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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