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할 구분하며 성차별…성평등 세상으로 가야

입력 2019-01-25 10:22
수정 2019-01-26 13:47
성역할 구분하며 성차별…성평등 세상으로 가야

조앤 리프먼 저서 '제가 투명인간인가요?'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폭로로 세상이 크게 술렁거린다. 법조계, 예술계, 교육계, 체육계 할 것 없이 그 열풍에 휘말려 들었다.

이는 근본적으로 성차별에 연유한다. 남존여비의 뿌리 깊은 편견과 관행이 낳은 후유증이다. 시대는 현대정보화 속으로 치달리고 있건만 생각과 언행은 과거의 관습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현상적으로는 여성들의 지위가 예전보다 많이 개선된 듯하다. 대학 진학률, 회사 취직률, 고시 합격률 등 각종 지표를 볼 때 '여풍'이라는 말이 실감 나기도 한다.

하지만 내면의 실상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 비율이 뚝뚝 떨어지고, 대부분의 여성은 직장 일과 가사 노동이라는 이중고로 하루하루가 힘겹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경단녀'가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 한국의 경단녀 비중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4위를 차지한다.

조앤 리프먼의 저서 '제가 투명인간인가요?'는 성차별의 현상과 이유, 해결책 등을 찬찬히 밝히고 모색한다. 그 많고 똑똑한 여성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 어디로 하나둘 사라져갔는지 탐구하는 것. 이와 함께 여성과 남성이 상호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공존 상생하는 방법도 일러준다. 제도적 성 평등, 일상의 성 평등, 직장에서의 성 평등은 개인은 물론 기업과 국가에도 도움이 된다.

저자 역시 남녀 차별의 유리천장을 깨고 자아를 실현해온 '알파걸'이다. 두 아이의 엄마로 임신과 출산, 육아의 터널을 치열하게 통과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부주필 자리에 올랐다. 여성으로는 최초였다. 이어 미국 굴지의 미디어 기업인 개닛의 최고콘텐츠책임자이자 USA투데이 편집장까지 역임했다.

저자는 여성 차별의 뿌리인 무의식적 편견에 주목한다. 물론 외견상으로 남녀의 평등이 나날이 실현되고 있고, 학교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능력이 전혀 다르지 않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남성은 일, 여성은 가족과 동일시하는 등 성 역할과 능력치를 구분하며 은연중에 차별한다. 같은 성공을 해도 남성은 자신의 투지와 지성 덕분이라고 여기지만, 여성은 행운이 따라서라며 그 의미를 애써 축소한다.





다음은 저자가 성 불평등을 설명하는 트랜스젠더의 사례. 미국 신경세포 권위자이자 스탠퍼드대학의 생물학자인 벤 바레스 박사는 여성 바버라로 살다가 마흔두 살 때 성전환을 했다.

대학 시절에 어려운 문제를 수백 명의 학생 중 혼자만 풀어내자 자신이 아닌 남자친구가 대신 풀어준 게 틀림없다는 의심을 받았다. 박사과정 시절에는 여섯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나 단 한 편의 논문을 발표했던 남학생에게 연구원 자리를 뺏기기도 했다.

하지만 성전환 후에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누구도 그의 능력과 권위에 의문을 품지 않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같은 조건일 때 남성은 여성보다 당연히 더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자신의 지능 지수를 5점 높게 과대평가했지만, 여성은 오히려 5점 정도 과소평가했다. 따라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바버라가 정반대 경험을 하는 건 당연하다고 하겠다.

이런 편견 속에 대부분의 사람은 남성 직원과 여성 직원이 함께 있을 경우 남성을 자연스레 상사로 여긴다. 남자 직원이 더 똑똑하고 신속하게 일 처리를 해낼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이런 편견이 승진 등의 차별을 가져와 조직 내 고위직으로 갈수록 남성의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다. 여성은 '내집단'인 남성보다 권력이 적은 '외집단'으로 간주된다. 심지어 여성 자신조차 이를 내면화해 자신의 가치와 공헌도를 남성보다 낮게 평가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가 고정관념에 좌우되기 쉽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런 악순환을 끊는 방법으로 여성 작가들이 의견을 낼 때 다른 사람들에게 가로막히지 않게 조치한 드라마 '워킹 데드'의 제작자 글렌 마자라, 블라인드 오디션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여성 단원의 비율이 50%까지 늘어난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이어 남녀가 평등하게 경쟁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도 일러준다. 여성의 말을 가로막는 사람을 가로막자, 여성이 의견을 냈을 때 주변에서 되풀이해 이를 증폭시키고 서로의 성과를 공유하고 상대를 칭찬해주자, 여성을 위한다면서 대신 결정하지 말자 등이다. 그러면서 책의 말미에서 결론처럼 이렇게 강조한다.

"여성 본인들의 힘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남성들도 성 평등 문제를 인식하고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여성에게 평등한 사회는 남성에게도 평등한 사회다. 소녀들에게 허용되는 직업뿐만 아니라 소년들에게 허용되는 직업의 정의도 더욱 확장돼야 한다. 공감력이나 협동력 같은, 예부터 여성적 가치라 여겨진 가치를 점점 더 중시하는 추세의 현대 경제에서는 더욱 그래야 한다."

문학동네 펴냄. 구계원 옮김. 420쪽. 1만5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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