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권법정 "伊, 룸메이트 살해혐의 벗은 美여성에 배상해야"

입력 2019-01-25 01:32
유럽인권법정 "伊, 룸메이트 살해혐의 벗은 美여성에 배상해야"

"방어권 침해 인정돼…2천300만원 지급해야"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에서 영국인 룸메이트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8년여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5년 최종 무죄 판결을 받으며 이탈리아 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미국인 아만다 녹스(30)에게 이탈리아 정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유럽인권재판소(ECHR)가 판결했다.



ECHR은 24일(현지시간) 녹스가 당시 사건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를 당했다며 이탈리아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ECHR은 "녹스가 조사 과정에서 방어권을 침해 당했다"며 이탈리아 정부는 이로 인한 피해 보상을 위해 원고에게 1만8천유로(약 2천300만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녹스는 사건에 대한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변호사를 제공받지 못하는 등 제대로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했고, 심문 과정에서 경찰로부터 뒤통수를 맞는 등 비인간적이고, 모멸감 느껴지는 처우를 받았다고 주장해왔다.

이탈리아 중부의 페루자 대학에 교환 학생으로 왔던 녹스는 2007년 11월 룸메이트인 영국인 여대생 메러디스 커쳐(당시 21세)를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녹스가 커쳐에게 자신의 남자 친구 및 아프리카계 이웃집 남성 등과 집단 성관계를 요구했다가 싸움이 벌어져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결론지었다.

결백을 주장했던 녹스와 녹스의 당시 남자 친구 라파엘 솔레치토(31)는 나란히 체포돼 1심에서 각각 살인과 성폭행 혐의로 각각 징역 26년형, 25년형을 받았으나, 복역 4년째인 2011년에 열린 항소심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를 받고 석방됐다.

커쳐의 몸에서 DNA가 발견된 이웃집 거주자 루이 구데(당시 20세)는 유죄가 확정돼 16년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이날 ECHR의 선고 후 녹스의 변호인 카를로 델라 베도바는 "녹스가 룸메이트 살해 혐의로 기소되고, 무죄로 밝혀진 것은 이탈리아 50년 사법 역사상 가장 큰 실수다. 녹스는 이 과정에서 선정적인 언론 보도 등으로 인해 크나큰 피해를 입었다"며 이번 판결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시애틀의 자택에서 스카이프를 통해 변호사로부터 판결 내용을 전해 들은 녹스는 승소 소식에 눈물을 내비쳤다고 이탈리아 ANSA통신은 전했다.

녹스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사건이 벌어진 직후에 변호사나 통역 없이 10살 아이 수준으로 이해하는 언어로 닷새에 걸쳐 무려 53시간을 조사받았다. 경찰에게 누가 커쳐를 죽였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기억해내라'는 말과 함께 뒤통수를 얻어 맞았다"는 글을 올려 이탈리아 경찰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받았음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이어 자신과 당시 남자 친구였던 솔레치토는 사법당국으로부터 정신적인 고문과 학대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ECHR은 이날 재판에서 녹스의 방어권이 침해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경찰로부터 비인간적이고, 모멸감 느껴지는 대우를 받았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ECHR은 또한 녹스가 룸메이트 살해 사건을 둘러싼 조사 초기에 사건과 무관한 콩고 이민자 출신인 페루자의 술집 주인을 범인으로 몰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것의 책임이 경찰에 있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서는 판단을 하지 않았다.

녹스는 당초 자신이 무고한 술집 주인을 커쳐의 살해범으로 지목한 것은 경찰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한편, 항소심 판결 직후 미국으로 돌아간 녹스는 거액의 회고록 출판 계약을 맺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일약 유명인으로 떠올랐고, 커쳐의 죽음을 둘러싸고 유가족과 진실을 둘러싼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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