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입에서 사라진 'FFVD'…美비핵화전략 궤도수정 포석?
ICBM폐기·핵동결 '1차목표' 단계적해법 작용했나…北 자극 피하려는 의도 관측도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북미 협상을 총괄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과 주무 부처인 국무부 당국자들의 입에서 북한 비핵화의 목표인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란 키워드가 점점 사라지는 분위기다.
이러한 변화는 2월 말로 예정된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폐기 및 해외반출과 핵 동결을 1차 목표로 하는 단계적 해법 쪽으로 궤도를 수정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는 상황과 맞물려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미 정부의 'FFVD' 표현은 국무부가 21일(현지시간) 폼페이오 장관과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의 통화사실을 전하면서 미일 외교수장이 FFVD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힌 것과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18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 면담 직전 일정을 공지하면서 "두 나라(북미)의 관계 및 FFVD의 지속적 진전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한 정도다.
국무부는 미일 외교수장 통화와 같은 날 이뤄진 강경화 장관과 폼페이오 장관의 통화를 소개하면서는 FFVD라는 표현을 따로 쓰지 않았다.
샌더스 대변인도 김 부위원장의 트럼프 대통령 면담이 실제 이뤄진 뒤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는 FFVD 대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라는 표현으로 바꿔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해 12월 17일 윈스턴 피터스 뉴질랜드 부총리 겸 외교장관과 회담하고, FFVD 노력을 뉴질랜드가 꾸준히 지원해준 것에 감사를 표시했다고 국무부가 밝힌 이후 공개석상에서 FFVD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쓰지 않고 있다.
국무부도 지난해 12월18일 "현재까지 우리 목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이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약속한 FFVD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한 데 이어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을 공지하면서 그 목적을 '양국간 공통 목표인 FFVD를 위한 한미간 조율 강화'라고 밝힌 뒤로 21일 미일 외교수장 통화 내용에서 FFVD를 거론한 것 외에는 이 표현을 쓰진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11일 폭스뉴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하면 미국민에 대한 리스크를 줄여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북미간) 대화에서 진전시키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미국민의 안전이 목표이다"라고 말하면서 "'완전하고 최종적인 비핵화'에 도달해야 한다. '국제 전문가들에 의해 검증된, 완전하게 비핵화된 북한'이라는 핵심명제에서는 조금도 변형된 게 없다"고 강조했지만, 단어를 하나씩 누락하면서 FFVD란 정확한 표현은 묘하게 비껴갔다.
그는 21일 위성 연결로 진행한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WEF) 연설 직후 문답에서는 김 부위원장의 방미, '스티븐 비건-최선희 라인'의 스웨덴 실무협상, 2차 북미정상회담 등의 북한 관련 현안을 언급하면서 '완전한 비핵화'(full denuclearization)라고 표현했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해 여름부터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FFVD' 라는 표현이 현저히 줄어든 것은 시기적으로 미국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국면에서 비핵화에 대한 협상 전략을 가다듬고 있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FFVD를 궁극적 좌표로 유지하되 일차적인 협상의 초점을 미국의 최대 위협이 되는 ICBM 폐기나 핵무기 또는 핵물질 생산을 막는 '핵 동결'에 맞추고 있다는 관측인 셈이다. 장기전에 대비, 핵 동결을 '입구'로 하고 핵 폐기를 '출구'로 하는 단계적 비핵화 프로세스 쪽으로 무게이동을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스티븐 비건-최선희 라인'의 지난 19∼21일 스웨덴 실무접촉 기간 북미 간에 'ICBM 폐기·반출-영변 핵 사찰·폐기-핵 동결'과 개성공단 재개 등과 맞물린 제재완화를 맞바꾸는 '스몰 딜'에 대한 절충 시도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치 않다.
실제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11일 폭스뉴스 방송 인터뷰에서 "궁극적으로 미국 국민의 안전이 목표"라고 밝힌 데 이어 18일 미디어 그룹 '싱클레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것(비핵화)이 긴 과정이 되리라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다. 그것을 하는 동안에는 위험을 줄일 필요가 있다"며 "우리는 그 위험을 줄이고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확장 능력을 줄이길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동시에 북미 간에 '디테일 싸움'인 실무협상이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국면에서 미국이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으려는 차원도 깔린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 등 미 당국자들이 언급하는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VD)나 '완전한 비핵화'(FD), '최종적이고 완전한 비핵화'(FFD) 등도 'FFVD'라는 표현만 기술적으로 피했을 뿐 결국 내용면에서는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FFVD가 처음 등장한 것도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 7월 6∼7일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을 앞두고 7월초 이뤄진 판문점 실무접촉에서 북한의 반발 등을 감안,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의 대체어로 사용되면서다.
당시 북한측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기는 물론 차후에도 어떤 용도의 핵개발 조차도 불가능해지는 '불가역적인(Irreversible)' 비핵화 요구는 패전국과의 회담에서나 가능한 '항복문서' 요구에 다름없는 일이라며 강력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 CVID 대신 '완전한 비핵화'라는 문구가 담기면서 원래 목표치에 못 미친다는 미 조야의 비판이 제기된데 따른 대응 차원도 그 배경으로 거론됐었다.
미 행정부는 기존 비핵화 목표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조야 일각에서는 자칫 미국이 FFVD에서 후퇴하는게 것 아니냐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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