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세상] '뚱카롱' 열풍…"기형적 마카롱" vs "한국적 재해석"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최근 디저트 시장에선 '뚱카롱'이 대세다.
뚱카롱은 '뚱뚱한 마카롱'을 줄인 신조어. '꼬끄(coque)'라고 부르는 마카롱 껍질 사이에 필링을 두텁게 채워 넣은 형태를 말한다.
보통 마카롱은 꼬끄와 필링의 높이가 1:1 정도의 비율로 납작한데 최근 유행하는 뚱카롱은 필링을 많이 채워 넣어 훨씬 두껍다. 한껏 벌린 엄지와 검지로 뚱카롱을 쥐고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뚱카롱 필링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 딸기, 체리 등 생과일을 통째로 넣거나 쿠키, 크래커 등 시판 과자의 일부나 전부를 필링에 박아넣은 형태도 자주 눈에 띈다. 설탕과자인 마카롱 재료로는 쓰이지 않던 짭조름한 치즈를 올리거나 콩가루를 뿌린 형태까지 마카롱의 변신은 끝이 없다.
◇ "밥 대신 먹어도 좋아" vs "주객 전도된 괴식(이상한 음식)"
뚱카롱의 인기는 이른바 '달달구리'(단 음식)에 열광하며 디저트 시장을 주도하는 20∼30대 젊은 여성들에게서 더욱 선풍적이다. 이들이 주 이용층인 SNS 인스타그램에서 '#뚱카롱'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있는 게시물은 18만 건에 이른다.
또 최근에는 초등학생에게로 뚱카롱 열풍이 옮겨가 학교 행사 등에 보낼 간식으로 뚱카롱을 단체 주문하는 학부모들도 많아졌다는 게 디저트 업계의 전언이다.
평소 뚱카롱을 즐기는 대학생 한소현(24)씨는 24일 "뚱카롱이 나오면서 마카롱의 색과 모양이 다양해져서 더 특색있는 디저트를 먹는 즐거움이 있다"며 "필링이 꽉 차서 보통의 마카롱보다 여운이 길어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뚱카롱을 비판하는 이들도 상당하다.
주된 이유는 마카롱의 본질을 해친다는 것이다. 마카롱은 아몬드 가루나 페이스트로 구워내는 꼬끄의 바삭함이나 쫀득함을 즐기려고 먹는 것이고 필링은 부차적인 요소인데, 필링이 과하게 강조된 뚱카롱은 주객이 전도됐다는 것이다.
플랑**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트위터 이용자는 "마카롱 잘한다고 추천받는 가게 중 열에 아홉이 뚱카롱집이라 괴롭다"면서 "개성적이라서 좋은 것도 정도껏이지 필링을 두툼히 넣어서 꼬끄의 식감을 숨기고 푸짐해 보이게 만든 게 '맛있는 마카롱'이라고 불리는 건 어딘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임규영(24)씨도 "뚱카롱은 무엇보다 먹기에 너무 불편하다. 입을 크게 벌려서 겨우 먹고 나면 입 주변과 손에 필링이 묻곤 해서 곤란했다"면서 "크림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원래 달기로 유명한 보통 마카롱보다도 훨씬 달아서 쉽게 질린다"고 말했다.
트위터에서는 뚱카롱 현상을 빗대 "이러다 '한 끼 든든 뚱카롱, 샐러드 뚱카롱, 햄카롱'이 나오는 것 아니냐", "이렇게 높은 마카롱은 뚱카롱도 아니고 '월정사 8각 9층 석탑카롱'"이라는 우스갯소리 섞인 비판도 나온다.
◇ "'SNS용 음식' 문화의 산물"
우리 사회의 음식 문화에서 최근 두드러진 면을 뚱카롱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의견도 있다. 음식은 단순히 맛을 즐기거나 배를 채우는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어 자신의 삶을 SNS상에 전시하기 위한 주요한 아이템이 되었다. '맛'보다는 '외양'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색감이 곱고 화려한 마카롱은 원래도 인기 피사체였는데, 판매자든 소비자든 자신이 만들거나 사 먹는 마카롱이 더욱더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으면 하는 바람이 뚱카롱으로 변화를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문지운(25)씨는 "뚱카롱의 인기는 SNS에 사진 찍어 자랑하기 좋은 것도 큰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SNS에 올리기 좋은 소위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소재라는 점이 인기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외양에만 치중해서 뚱카롱을 만들어 판매하는 업체들을 겨냥한 비판 목소리도 있다. 한 누리꾼은 "제대로 구워내기 어려운 꼬끄를 잘 만드는 기술이 없는 업체들이 필링의 양과 마카롱의 외양으로 승부하는 것 같다"고 의심했다.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층의 가성비 중시 경향이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분석도 있다.
마카롱의 주재료인 아몬드 가루나 페이스트는 비싼 식자재에 속한다. 보통 1㎏에 1만원가량에 판매되는데 다른 구움 과자류의 주재료인 밀가루의 단가를 생각하면 상당한 고가에 해당한다. 크기가 작은데도 마카롱 하나에 2천∼3천원에 달하는 이유 중 하나도 재룟값이 비싸서다.
초콜릿이나 마카롱 같은 디저트류는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단맛이 주는 쾌감을 즐기기 위한 것들이지만 '가성비'를 최고의 소비 기준으로 삼는 경향에서 디저트에서 마저 풍성한 양이 주는 '가성비 만족'을 찾는다는 것이다.
뉴욕 요리학교에서 제과를 전공하고 프리랜서 파티시에로 활동하는 박모(40)씨는 "커피 한 잔 값에 맞먹는 가격에 한두입이면 사라지던 과자가 필링이 꽉 차 양이 많아지니 보상심리랄까 만족을 더 느끼는 소비자가 많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프랑스 국립고등제과학교(ENSP)에서 배운 디저트 스튜디오 '르페셰미뇽'의 김희정 파티시에도 "마카롱이 비싼 고급 디저트로 인식되다가 슬슬 단가가 내려가고 대중화되면서 생겨난 현상"이라며 "제대로 된 디저트를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거리감이 있다"고 말했다.
◇ "일반 마카롱도 원형과 달라…한국다운 색깔 입힌 것"
'뚱카롱 옹호론'도 만만찮다. 두 겹의 꼬끄 사이에 얇게 필링을 채운 일반적 마카롱이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닌것처럼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뚱카롱도 기형적 변형이 아니라 창의적 재해석으로 봐야 한다는 반박이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마카롱은 16세기 카트린 드 메디치가 프랑스 왕과 결혼하면서 프랑스로 전해졌고 초기의 마카롱은 아예 필링은 없고 과자처럼 꼬끄 한 겹으로만 돼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초 파리에서 두 겹의 꼬끄 사이에 필링을 넣은 지금의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파리 마카롱'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서울디자인페어에 참여하는 뚱카롱 업체 사장 J씨는 "마카롱이 프랑스로 넘어가면서 부드럽게 먹기 위해 크림을 넣기 시작한 게 한국에 오면서 한국다운 색깔로 바뀐 것이 뚱카롱"이라며 "마카롱의 본고장인 프랑스 사람들은 식사 뒤 후식의 개념으로 마카롱을 주로 먹고 우리나라에서는 마카롱만 따로 즐기는 편인 것도 우리식 마카롱이 탄생하게 된 요인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인과 한국인의 입맛이나 취향에 차이가 있어 뚱카롱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다는 해석이다. 프랑스의 2대 마카롱 브랜드로 프렌치 마카롱 특유의 바삭함을 가진 라뒤레나 피에르에르메가 우리나라 시장에 진출했다가 사업 부진으로 철수한 것도 디저트에 대한 양국의 취향 차이와 무관치 않다는 이야기다.
지칠 줄 모르는 최근의 뚱카롱 열풍에 대기업도 가세했다. CJ푸드빌의 제과 브랜드 뚜레쥬르나 패밀리레스토랑 체인 빕스 등이 뚱카롱 제품을 출시했다. 뚱카롱에 대한 논란은 있어도 그 인기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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