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기행] 상주, '삼백'(三白)의 맛을 입다
(상주=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경북 내륙지역의 음식은 크게 내세울 게 없는 게 사실이다. 척박한 산지가 대부분이어서 음식 재료가 많지 않다. 곡창지대도 적고 해산물이 나오는 바다와도 거리가 멀다. 자연히 산해진미가 다양한 다른 지역보다 음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주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낙동강 상류지만, 드넓은 평야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지형적으로 보면 동쪽 지역은 분지이며, 북서부는 산악지역이어서 겨울의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준다.
이안천과 북천·남천이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하는 지역에는 비옥한 함창평야와 상주평야가 발달했다. 게다가 맑은 날이 연평균 156일에 달해 쌀 등 작물 재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장점 덕분에 상주는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불렸다. 상주에서 나는 3가지 흰 산물이란 뜻으로, 흰 쌀과 누에고치, 곶감이 그것이다.
곶감은 익으면서 하얗게 변하기 때문에 삼백에 포함됐다. 예전의 명성 그대로 상주 쌀은 전국 최고급으로 인정받고 있다.
상주에서 나오는 특산물들은 대체로 이름과 실상이 들어맞는다는 뜻을 가진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한자어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 많다.
상주 쌀은 '명실상주쌀'이란 브랜드로 팔리고 있다. '명실상주곶감'으로 불리는 곶감 역시 당분함량이 높은 데다 쫄깃거리는 식감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삼백에 속하지는 않지만, 이 밖에 상주가 자랑하는 먹거리로는 '명실상감 한우' 등이 있다.
상주는 이런 좋은 여건을 가졌음에도 '명실상부'한 한정식집이 그리 많지는 않다. 국이나 찌개 하나 해서 밥을 먹는 게 일상인 이 지역의 음식문화를 생각하면 언뜻 이해도 될 듯하다.
실제로 남성동에는 80년 된 해장국집이 한군데 여전히 성업 중이다. 밥과 국이 한 그릇에 말아져 나오는 해장국밥이다.
그러나 상주 오일장이 열리는 상주 시내 한가운데 주인이 간간이 바뀌기는 했지만 20년 가까이 영업을 해 온 한정식집을 찾아볼 수 있다.
시내 한복판인 남성동.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 'ㄱ자' 한옥이 한 채 다소곳이 서 있다. 제법 연식이 된 이 건물은 주인장 말로는 대략 100년가량 됐다고 한다.
집으로 들어섰더니 발이 시리다. 마룻바닥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주인이 실내화를 내줘서 신었더니 좀 나아졌다.
집 내부를 둘러보니 고풍스러운 옛 가옥의 느낌이 제법 멋스럽다. 음식을 옮기는 종업원을 따라 복도 쪽과 달리 따스하게 데워진 방으로 들어갔다.
주방 한군데를 제외하고는 큰 방 3개에 작은 방이 하나뿐인 작은 음식점이었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가정집이었을 것이다. 이 집 음식은 대부분 지역에서 생산되는 음식 재료를 사용한다.
메뉴 가운데 '주인상'을 시켰는데 불고기 전골과 조기, 잡채 등 맛깔스러운 메뉴 열대여섯 가지로 구성돼 있다.
간장게장 등을 주메뉴로 한 3만원 짜리 대감상은 지역 농수산물이 주재료가 아닌 듯해서 2만원짜리 주인상을 주문했다.
불고기에 쓰인 한우는 상주에서 나온 '명실상감한우'라 한다. 명실상감한우는 최근 우수축산물 브랜드 인증에서 2008년부터 12년 연속 우수축산물인증을 받았다.
상주에서 생산되는 한우는 순수 한우에서 태어난 송아지만을 엄선해 키운 것이라고 한다. 놋그릇에 담긴 쌀밥은 뚜껑을 열자마자 바로 그 참모습을 드러냈다.
윤기가 자르르한 밥은 쌀이 혀 안에서 매끄럽게 굴렀다. 삼백의 고장다운 맛이었다.
불고기 옆에는 잘 쪄진 단호박 찜이 눈에 띄었다. 역시 상주산 농산물을 썼다.
조기는 살짝 익힌 뒤 집에서 직접 담근 조선간장으로 만든 특제 소스를 넣어 다시 조렸다. 그냥 구운 조기와 달리 촉촉한 육질이 전해졌다.
시래깃국 역시 집에서 직접 말린 시래기로 국을 끓여 냈다고 한다.
샐러드를 자세히 보니 다른 지역엔 없는 재료가 얹혀 있다. '삼백' 가운데 하나인 상주 곶감과 제철 과일인 딸기다. 역시 곶감의 고장다운 샐러드였다. 곶감의 쫄깃쫄깃한 식감과 달콤한 맛은 샐러드 소스의 새콤한 맛과 잘 어울린다.
예로부터 상주 곶감은 알아주는 명물이다. 상주는 전국 곶감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곶감의 고장이다.
식사를 끝낼 즈음 바깥이 떠들썩해 내다봤더니 중절모를 쓴 노신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지역 종교인들의 단체모임이라 했다.
사진 취재가 좀 부실한 듯해서 복도에 서서 사진 몇장을 더 찍고 있노라니, 들어와 식사를 같이하고 가라고 권한다. 밥맛보다 인정이 더 구수했다. 갈길 바쁜 나그네는 기분 좋은 권유를 뒤로하고 대문을 나섰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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