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무명반란' 롱 "포기하지 않았기에 이런 날이…"
9년 동안 미니투어·2부투어 전전…앞서 3차례 대회 모두 컷탈락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오래 기다린 만큼, 포기하지 않았기에 더 달콤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늦깎이 새내기 애덤 롱(미국)위 '무명반란'이 화제다.
롱은 21일(한국시간) PGA투어 데저트 클래식 최종 라운드에서 '거물' 필 미컬슨(미국), 그리고 '59타의 사나이' 애덤 해드윈(캐나다)과 챔피언조 대결에서 1타차 짜릿한 역전 우승을 거뒀다.
그는 이 대회 우승 전까지는 아예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팬이 더 많을 정도로 철저한 무명이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프로 골퍼로 나섰지만 9년 동안 PGA투어에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했다.
그가 주로 뛴 무대는 미니투어와 캐나다 투어였다. 지금은 없어진 미니투어 후터스 투어 대회 우드 크리크 클래식에서 2011년 정상에 오른 게 프로 선수로 유일한 우승 경험이었다.
당시 우승 상금으로 2만5천 달러를 받았다는 그는 2012년 PGA 2부투어 웹닷컴 투어 입성에 성공했지만 상금랭킹 127위에 그쳤고 2015년까지 또 미니투어를 떠돌아야 했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두 번째 웹닷컴 투어 생활도 순탄치는 않았다. 상금랭킹 40위 밖을 전전하던 그는 마침내 PGA투어 카드를 손에 넣었다.
우승은 없었지만, 준우승 한번을 포함해 5차례 톱10 입상에 무엇보다 17번이나 컷을 통과하는 꾸준한 성적 덕에 정규시즌 상금랭킹 23위로 꿈에 그리던 PGA투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PGA투어 무대도 녹록지 않았다.
개막전 세이프웨이 오픈에서 공동 63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쥔 그는 이어진 샌더스 팜스 챔피언십, RSM 클래식, 소니오픈에서 줄줄이 컷 탈락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는 이 대회에서 완전히 달라진 경기력을 선보였지만, 최종 라운드 중반까지도 그의 우승 가능성을 높게 본 전문가는 없었던 이유다.
그는 "팬들은 온통 필(미컬슨)의 이름만 외쳤다. (해드윈을 응원하러 온) 캐나다 팬들도 적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들러리였다"고 웃었다.
12번홀까지도 해드윈에 3타 뒤처져 있던 그는 마지막 5개 홀에서 버디 3개를 뽑아내며 역전극을 펼쳤다.
롱은 마지막 18번홀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렸을 때도 공동 선두인 줄도 잘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사실 나는 잃을 게 없는 처지였기에 우승 경쟁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롱은 "최종 라운드에 나서면서 머릿속에는 오로지 10위 이내만 들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덧붙였다.
톱10 입상으로 다음 대회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 출전 기회만 얻으면 만족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썩 뛰어난 성적으로 투어 카드를 받은 게 아닌 그에게는 대회 규모와 출전 선수에 따라 출전할 수 있는 대회가 있고 출전하지 못하는 대회가 있다. 타이거 우즈(미국)가 새해 들어 처음 출전하는 대회로 점찍은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은 애초 그가 출전할 수 없는 대회였다.
신인으로 데뷔해 고작 5번째 출전 대회에서 덜컥 우승을 차지한 그는 전과는 비교하기 힘든 신분 상승을 이뤄냈다.
마음 졸이던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 출전은 떼어놓은 당상이고 플레이어스 챔피언십과 '명인 열전' 마스터스, PGA챔피언십 등 메이저대회 출전권도 손에 넣었다.
2년 동안 PGA투어의 웬만한 대회는 다 출전할 수 있게 됐다.
106만2천 달러(약 11억9천782만원)의 우승 상금을 받아 단숨에 백만장자가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수확은 어떤 고난에도 골프 선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온 게 마침내 보상을 받았다는 뿌듯함이다.
"처음 웹닷컴 투어에 올라왔다가 다시 밀려났을 때부터 내가 해낼 수 있으리라는 걸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는 롱은 "내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했을 뿐이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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