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 "세월호 후 글못써…삶을 지속하고자 소설썼다"

입력 2019-01-19 06:01
수정 2019-01-19 13:41
윤대녕 "세월호 후 글못써…삶을 지속하고자 소설썼다"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근간과 개인의 정신을 모두 뒤흔들어놓을 정도로 참혹한 사건이었다.

윤대녕 작가가 5년여 만에 낸 여덟 번째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문학과지성사)에 실린 첫 작품 '서울-북미 간'의 K는 윤 작가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은 K는 세월호 침몰 후 밤마다 아이들이 물속에서 아우성치는 꿈을 꾸다 숨이 막혀 깨어나기를 되풀이한다.

하루하루를 억지스럽게 버텨내던 그는 결국 평소 SNS로 소통하던 H가 있는 밴쿠버로 떠난다.

H는 삼풍백화점 붕괴로 남편을 잃은 후 한국을 떠나 혼자 딸을 키우며 사는 여성이다.

둘은 서로의 인생을 공유하며 교감하지만, 여전히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K에게 H는 '제발 자신을 해치지 말아달라. 나는 당신과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K는 잠시 잊고 있었으되, 그동안 가슴에 들어와 박혀있던 돌들의 무게를 느낀다.

그러나 그는 숨을 한껏 몰아쉬고 나서 다시금 몸을 이리저리 버둥거려 본다.



1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윤 작가는 이 소설이 "삶을 지속하기 위한 글쓰기"의 일환이었다고 털어놨다.

세월호 침몰은 윤 작가에게 작가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그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사건이었다.

그는 2014년 4월 16일 '작가인 나의 죽음'을 경험하고 더 글을 쓸 수 없으리라는 예감에 깊이 사로잡혀 2015년 1월 그야말로 뿌리치듯 한국을 떠난다.

"글이 안 써지고 무력감과 자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학교에 있으니 젊은 세대를 많이 보는데 기성세대로서 자책감이 심해지면서 작가로서 발화가 잘 안 되더라고요.

한국을 떠날 때 '마음이 좀 치유되겠지' 기대했는데 새로운 환경이 날 위로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니까요. 힘들었지만 쓰고 나니 역시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역할을 할 수 있는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2015년 북미에서 쓴 '서울-북미 간'을 시작으로 한국에 돌아와 2018년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발표한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까지, 이번 소설집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 작가 윤대녕에게 나타난 변화를 고스란히 담겼다.

"특별히 어두운 쪽에 시선이 갔던 것은 아니에요. 다만 우리 사회가 지난 몇 년간 그런 분위기에 휩싸여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없는 일이 되지 않아요. 세월호가 촛불시위로 이어지고, 결국 정권도 바뀌었죠.

그런 시대를 지나오면서 내 소설이 반응했고, 결국 '죽음'의 이미지가 작품에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지난해 말 어머니의 죽음은 세월호 참사만큼 그에게 큰 충격을 줬다.

고아가 된 듯한 느낌에 실의에 빠진 윤 작가는 한 해가 가고 올해 초 책이 나오면서 인생의 한 시기가 정리됐다는 느낌에 자신을 추스를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한줄 한줄 글을 써 내려가 마침내 자신을 작가로 다시 인정한 것처럼, 그의 소설 속 인물들도 다시 삶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딘다.

"'밤의 흔적'에서 주인공은 자살하려는 여자에게 '당신이 글을 썼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며 그를 살려내죠.

다시 시작되는 삶에 대한 암시를 여러 편에 의도적으로 담았습니다.

어쨌든 소설의 마지막 명제는 항상 '그리고 인생은 계속된다'이자 동시에 '그래서 인생은 계속된다'니까요."

이번 소설집은 한때 '생물학적 상상력'으로 '사회학적 상상력'을 고갈을 극복하고 1990년 한국 문학을 개시했다는 평을 받은 윤 작가의 작품으로서는 드물게 사회적인 메시지가 많이 들어 있다.

'총'은 경제개발 세대인 노년층과 민주화 투쟁 세대인 중장년층 간 대립을 한 가족에 빗대어 그려냈다.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에서는 가부장적인 폭력과 이에 피해를 본 여성들의 동료적 연대를 담았다.

윤 작가는 "1990년대 등단했을 때는 지난 시대가 이념 대립으로 망가진 것 같아 존재론을 회복하자는 의미에서 그런 소설을 많이 썼다"며 "아마 세월호 사건이 사회학적인 전개를 다시 펼치게 된 계기인 것 같다"고 돌이켰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더 동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젠가 깨어나면 다시 삶에 반응하고, 사회에 반응하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겠죠.

결국 삶을 지속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 글을 써왔구나, 다행이다 글을 써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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