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를 회원으로…민족문제연구소 '이중정관' 논란
1만3천명은 단순 후원자…'실제회원'은 10명 불과
교육청 미승인정관 운용해 시정명령·경고처분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 등을 펼쳐온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가 '이중정관'을 운용하며 회원을 속여왔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지도·감독 책임이 있는 서울시교육청은 민원이 제기된 뒤에야 뒤늦게 실태조사를 해 시정을 요구했다.
20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이 서울시교육청에서 받은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1996년 법인으로 설립된 민문연은 2003년 교육청 승인을 받은 정식정관과는 별도로 정관을 하나 더 만들고 교육청 승인을 받지 않은 채 현재까지 함께 사용해왔다.
민문연에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내며 '회원'으로 불리는 사람은 현재 1만3천여명이다. 하지만 승인정관상 이들은 회원이 아니고 단순 후원자다. 회원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민문연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실제 회원'은 단 10명에 그친다.
이 때문에 매년 2~3월에 개최된 후원자 대상 '정기총회'도 법적으로는 무의미한 행사였다. '실제 회원'이 참석해 법상 유효한 총회는 '정기총회'와 따로 진행됐다.
그러나 민문연은 별도의 정관·회원·총회가 있다는 사실을 후원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실제 회원'들이 여는 총회 회의록도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은 "후원자(후원회원)를 대상으로 매년 정기총회를 개최해 후원자들이 (자신을) 회원으로 인지하고 있다"면서 "정관을 고치거나 회원 구분을 명확히 공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청은 미승인정관을 폐지하라는 취지의 시정명령과 함께 민문연 이사·감사 7명 전원에 경고처분을 내렸다.
이에 민문연은 미승인정관이 '내부규정' 성격으로 조직 운영상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후원자가 늘어나면서 지역지부장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신설하려 했으나 1996년 법인화 당시 관할청에서 이사회와 총회만 규정된 '표준정관'을 사용하도록 강제해 별도의 정관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 승인정관상 총회를 열려면 재적 회원 과반이 출석해야 하는데 1만여명의 후원자를 모두 회원으로 인정하면 총회성립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과 회원에게는 기부금 연말정산 세액공제 혜택을 줄 수 없다는 점 등도 고려했다고 민문연 측은 밝혔다.
민문연 관계자는 "교육청이 승인한 정관에 따라 (법인이) 해야 할 일은 모두 했다"면서 "대부분 시민단체가 후원자를 후원자로 부르지 않고 회원이라고 부르며 (회원으로 지칭하는 데 따른) 혼돈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승인정관에 따른 정기총회 등이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는 점을 후원자들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모른다"면서 "이를 알리지 않았다고 회원(후원자)들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만 정관·총회·회원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후원자에게 안 알린 점은 문제라는 지적에는 "(그것 때문에) 혼돈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다"고 했다.
민문연은 교육청 명령에 따라 지난 12일 총회를 열어 미승인정관을 폐기하고 미승인정관 내용을 승인정관에 반영하기로 결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일을 두고 서울시교육청의 법인감독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문연이 2003년 이후 15년 가까이 매년 회원이 10명이라고 보고해왔음에도 작년 관련 민원이 제기될 때까지 교육청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친일인명사전 편찬과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등 '규모 있는' 사업을 꾸준히 펼쳐온 단체가 회원이 고작 10명이고 십여년간 단 1명도 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교육청은 특히 2014년 민문연 실태조사도 벌였으나 '이중정관' 등 문제를 찾아내지 못했다.
한편 이번 실태조사에서는 민문연이 2017년 4분기와 2018년 1·2분기 기부금 14억8천여만원을 교육청의 사전승인 없이 사용한 점도 확인됐다. 다만 이 기부금은 모두 목적에 맞게 사용된 것으로 사후 소명됐다고 교육청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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