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In] "가야 한다" vs "못 보낸다" 울산고 이전 '갑론을박'

입력 2019-01-19 07:33
[현장 In] "가야 한다" vs "못 보낸다" 울산고 이전 '갑론을박'

울산교육청, 건물 노후화·학령인구 감소 이유 중구→북구 이전 추진

중구 "지역 교육환경 쇠퇴" 반발 vs 학교법인 "반대 명분 없어"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울산시 중구에 있는 사립고등학교 울산고등학교의 북구 송정지구 이전 추진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학교법인 측은 학생 안전과 학교 유지를 위해 이전이 불가피하다고 호소하지만, 명문 사립고를 떠나보내게 된 중구에서는 지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교육환경 쇠퇴를 초래할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울산고가 물밑에서 중구 내 이전을 타진하고 있다'는 말이 떠돌면서, 그동안 상황을 관망하던 북구에서도 "학교 이전을 조속히 추진하라"는 주장이 나오는 등 논쟁이 기초지자체 간 대결 구도로 확대하며 가열되는 형국이다.

◇ 65년 역사 명문 사립고, 건물 노후화로 이전 추진

울산고는 1954년 울산 최초 인문계 고등학교로 설립됐다. 65년간 졸업생 2만3천여명을 배출해 울산 명문 사립고로 꼽힌다.

그러나 개교 이후 학생 수가 꾸준히 증가함에 따라 9차례에 걸쳐 증축이 이뤄졌다.

지상 3층짜리 건물 기초 위에 공간을 확충하면서 5층 건물이 됐다. 결국 무리한 하중으로 2009년 건물 안전진단에서 재난위험시설인 D등급을 받았다.

학교법인인 창강학원 측은 공립 전환 후 학교 이전으로 비어 있는 옛 울산중 건물을 재건축하는 방안을 울산시교육청에 제안했지만, 교육청이 난색을 보임에 따라 성사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부분적으로 구조보강 공사가 이뤄져 안전도가 C등급으로 상향됐으나, 여전히 건물 콘크리트 중성화 정도는 'E등급'으로 평가됐다. 무리한 하중으로 창틀 뒤틀림과 창문 탈착 현상도 빈번한 수준이라고 창강학원 측은 밝혔다.

창강학원은 학생과 교직원 안전 문제에다 중구지역 학생 수 감소, 인근 자율형사립고였던 성신고의 일반고 전환 등으로 학생 수급도 우려된다는 이유를 들어 지난해 6월 시교육청에 '북구 송정지구로 학교를 이전하겠다'는 내용의 위치변경 승인신청을 했다.

법인은 애초 울산고 부지와 건물 등을 매각해 마련한 재원으로 이전경비를 확보, 30개 학급을 갖춰 2021년 3월 이전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시교육청은 그러나 법인 요청보다 1년 늦은 2022년 3월에 학교를 이전하고, 학급 규모는 24개로 조정하는 내용으로 지난해 9월 위치변경을 승인했다.



◇ "교육청이 구민 여론 무시" 이전 불가 외치는 중구

학교 이전 승인 소식이 알려지자 중구지역에서 즉각 반발이 터져 나왔다.

박태완 중구청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시교육청이 중구민 의견을 듣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이전을 승인했다"면서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청장은 "울산고가 떠나면 24만명이 거주하는 중구에는 고교가 8개만 남고, 인구 18만명의 북구는 고교가 11개로 늘어난다"면서 "학교 수 감소는 새로운 공공기관의 혁신도시 이전을 막는 요인이 될 뿐 아니라, 재개발·재건축 등으로 앞으로 중구 인구가 6만여명 늘어나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결정은 근시안적인 교육행정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청장은 "울산고 이전 부지로 중구 혁신도시 내 부지를 조율하는 방안도 있다"는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혁신도시 내 공공청사나 특수학교 예정 부지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됐다.

중구의회도 의원 만장일치로 '울산고 이전 반대 결의안'을 채택했다.

의원들은 "중구민이 원하지 않는 학교 이전 승인은 철회돼야 한다"면서 "협의체를 구성하고 울산고 이전 공론화 과정을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 여론이 악화하는 와중에 일각에서는 "교육청과 울산고가 학교 이전을 전제로 밀실 합의를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 학교법인 "이전 불가피" 주장하며 재협상 여지 흘려

시교육청은 "학교법인과 지속해서 협의하는 과정에서 '법인 재원 부담을 통한 송정지구 이전 추진 시 승인할 수 있고, 다른 입지로 이전을 추진하면 적정성을 검토해 처리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는 등 원칙적인 절차에 따라 추진했다"며 밀실 합의 의혹을 전면 반박했다.

또 "일반계고는 중구에 8개, 북구에 7개가 있어 큰 차이가 없고 총인구는 중구가 많지만, 앞으로 고교에 진학하게 될 9세 이하 아동은 북구가 5천명 정도 많다"고 덧붙였다.

말을 아꼈던 창강학원 김종일 이사장도 이달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경주와 포항 지진으로 학생 안전에 대한 불안이 더 커졌다"면서 "중구 내 이전을 위해 부지를 물색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고, 이전하더라도 학령인구 감소와 (자율형사립고였던) 성신고의 일반고 전환 등으로 5학급 이하 소규모 학교가 될 가능성이 컸다"고 이전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는 "학교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는 적정 학급 수가 보장돼야 한다"면서 "그동안 학교 이전에 손 놓고 있던 분들이 이제야 반대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고 꼬집었다.

다만 이 자리에서 법인 관계자가 "울산고가 중구에 남기를 바라고, 울산시·교육청·중구청 등이 확실한 약속을 한다면 다시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혀 또 다른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 발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이번에는 북구지역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자유한국당 소속 북구의원들은 지난 17일 성명을 내고 "지역사회 분열과 혼란을 조장하는 시교육청과 창강학원은 송정지구 이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면서 "창강학원은 처음 수립한 이전계획이 왜 이제 오락가락하는지 답변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학교법인, 교육청, 중구 사이에서 이어진 논쟁에 북구 여론이 가세하면서 당분간 갑론을박이 뜨거울 전망이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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