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혐의 40여개…"재판개입·블랙리스트 직접 관여"
징용재판 관련 김앤장 변호사 만나 기밀정보 전달 의혹
행정처 비판성향 판사엔 인사불이익 지시…梁은 혐의 전면부인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검찰은 18일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법원행정처가 민감한 재판에 불법으로 개입하고 특정 성향의 판사를 사찰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데 그의 지시와 개입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사법행정권을 책임진 수장으로서 여러 혐의사실을 단순히 보고받고 승인한 차원을 넘어 개별 사건에 양 전 대법원장이 구체적이고 직접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1∼15일 세 차례 양 전 대법원장을 소환해 조사하면서 그가 불법행위를 직접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정황이 비교적 뚜렷한 혐의사실 조사에 우선순위를 뒀다.
대표적인 사안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민사소송 개입 의혹이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은 강제징용 재판 진행과 관련해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내부 정보를 일본 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측에 귀띔한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압수수색해 김앤장 변호사와 양 전 대법원장 간 면담결과가 담긴 내부 보고문건을 물증으로 확보하기도 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공무상비밀누설죄가 성립한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나아가 "배상 판결이 확정되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제시하는 등 재판개입과 관련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도 받는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도 양 전 대법관이 직접 관여한 정황이 있는 핵심 혐의로 꼽힌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해마다 사법행정이나 특정 판결을 비판한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려고 이른바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문건을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 법원행정처 차장·처장과 대법원장이 차례로 서명한 이 문건은 사실상 판사 블랙리스트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 문건의 내용 및 실행과 관련해 기본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정당한 인사권한 행사로서 죄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부 배당에 개입한 의혹도 받는다. 검찰 조사결과 법원행정처는 2015년 11월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낸 지위확인소송에서 사건번호를 미리 비워두는 방식으로 2심 재판이 특정 재판부에 돌아가도록 배당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1심 판결이 자체적으로 세운 판단 기준에 어긋나게 나오자 "어떻게 이런 판결이 있을 수 있냐. 법원행정처 입장이 재판부에 제대로 전달된 것이 맞느냐"며 불만을 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원장은 이밖에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관련 행정소송 ▲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공작 사건 ▲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유출 ▲ 비자금 조성 등 40여개 혐의사실에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과 공모해 관여한 의혹을 받는다.
검찰은 작년 6월 이후 7개월간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해왔다. 이 과정에서 전·현직 판사 100여명을 조사하며 다양한 진술과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양 전 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이 확보된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혐의 입증을 자신하는 가운데 양 전 원장의 구속영장 심사에서 드러날 법원의 혐의 소명 여부 판단은 향후 본 재판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측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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