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에 억울함 푼 4·3 수형 피해자 "죄 벗어 눈물나"

입력 2019-01-17 15:26
수정 2019-01-17 16:47
70년 만에 억울함 푼 4·3 수형 피해자 "죄 벗어 눈물나"

가족들이 '진실·순결' 의미 나리꽃 달아줘…함께 만세삼창도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우리 가족 만세! 동네 사람들 만세! 대한민국 만세!"



17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외치는 만세삼창 소리가 겨울 하늘에 울려 퍼졌다.

이들 할아버지, 할머니는 제주4·3 당시인 1948∼1949년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타지로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4·3 수형 생존피해자다.

제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4·3 생존 수형인 18명이 청구한 '불법 군사재판 재심' 선고공판에서 청구인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4·3 당시 이뤄진 군사재판이 별다른 근거 없이 불법적으로 이뤄져 재판 자체가 무효임을 뜻하는 결정으로, 생존 수형인들이 사실상 무죄를 인정받은 셈이다.



"죄 없다고 법원에서 인정해준 것"이라는 설명을 듣자 70년 한 맺힌 긴 세월을 살아왔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이제 죄를 벗었구나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난다", "후련하다, 날아갈 것 같다"며 크게 기뻐했다.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며 자신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노력해준 많은 이들과 검찰, 법원 관계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오랜 세월 한을 품고 살아야만 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눈물 흘리기도 하고, 축하한다는 말에 주름진 얼굴에 환하게 미소를 띄우기도 하는 등 웃음과 울음이 교차했다.

김평국(89) 할머니는 "망사리 속에 갇혔던 몸이 이제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게 돼서 얼마나 시원한 일이냐. 이제 이름에 빨간 줄도 없어지고 옥살이한 흔적도 없어지게 되니 마음이 후련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딸인 심경신씨는 "어머니가 항상 얼굴도 어둡고, 자식들에게도 이에 대해 말씀을 잘 못하셨었는데 이렇게 누명을 벗게 돼서 정말 기쁘다"며 "많은 분과 도민 여러분이 함께 힘써주셔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동수(86) 할아버지는 "70년 전에 영문도 모르고 경찰이 데려가서 갖은 고문 받고, 오늘과 같은 재판도 없이 형무소 생활을 해서 가슴에 한이 맺혀 있었는데, 드디어 무죄 판결을 받았다"며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 죽을 때까지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감격스러워했다.

제주 4·3 수형 피해자들 70년만에 '무죄' 선고/ 연합뉴스 (Yonhapnews)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70년 긴 세월 동안 달고 있던 '수형인' 낙인을 비로소 뗀 대신 진실, 순결 등의 꽃말을 가진 나리꽃을 달았다. 수많은 언론사 카메라 앞에 서서 가족들이 달아준 꽃이 가슴팍에서 훈장처럼 빛났다.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는 '우리는 이제 죄 없는 사람이다. 4·3 역사 정의 실현 만세!'란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렸다. 원희룡 제주지사, 송승문 4·3희생자유족회장,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 등도 법원을 찾아 축하 인사를 전했다.

재심 재판을 이끌어온 양동윤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대표는 "늦었지만 왜곡된 4·3 역사를 바로잡아준 날, 정의가 실현된 날이다. 대한민국 법원이 우리 할망, 하르방들한테 죄가 없다고 했다"며 기쁜 마음을 전했다.

양 대표는 "4·3 역사 정의가 실현됐다고 말하고 싶다"며 "이제 억울한 옥살이에 대해 형사소송법에 의거해 형사보상 소송을 청구할 계획이다. 모두 연세가 많으시니 살아생전에 국가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수형 생존 피해자 변호를 맡았던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피해자 모두 고령임에도 법원을 찾아 어렵게 진술을 해주셨기에 이런 좋은 결과가 있었다"며 "이분들이 건강하실 때 형사보상과 국가배상이 이뤄져서 피해 회복까지 온전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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