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농성자·인권침해 피해자 안식처…녹색병원 인권치유센터

입력 2019-01-16 08:01
장기 농성자·인권침해 피해자 안식처…녹색병원 인권치유센터

2015년 인권클리닉으로 개소…426일 사투 파인텍 노동자들도 입원

이보라 센터장, 지원 요청 오면 전국 현장으로…"진료 통해 작은 힘 되고파"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426일간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다 지난 11일 지상으로 내려온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

오랜 농성에 지친 두 사람이 땅으로 내려와 건강검진과 치료를 받기 위해 향한 곳은 중랑구 면목동에 있는 녹색병원이었다. 두 농성자가 가까운 거리의 유명 종합병원을 마다하고 농성장에서 약 20㎞ 떨어진 작은 병원을 찾은 이유는 이곳에 국내 최초 '인권치유센터'가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인권클리닉'으로 시작해 2017년 지금 이름으로 새롭게 출범한 녹색병원 인권치유센터는 인권침해나 농성 등으로 건강이 상한 이들에게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단식농성으로 건강이 악화한 환자, 국가폭력 피해자, 성폭력 피해자, 성소수자, 난민 등 의료서비스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이 인권치유센터의 주된 지원 대상이다. 경제적인 곤란을 겪는 인권활동가들을 위한 건강검진도 제공한다.

이보라 녹색병원 인권치유센터장은 평소엔 다른 의사들처럼 외래병동에서 환자들을 본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연락이 오면 곧장 왕진 가방을 챙겨 전국 각지의 집회 현장으로 달려간다.

2017년 4월, 해직·비정규직 노동자 6명이 광화문의 한 빌딩 광고탑에서 27일간 단식농성을 벌일 당시 이 센터장은 40여m 광고탑에 직접 올라가 이들을 진찰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잡월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을 때도 이 센터장은 현장을 찾아 이들의 혈압과 혈당을 체크했다.

최근 고공농성과 단식을 끝낸 파인텍지회 조합원들의 주치의도 이 센터장의 몫이 됐다.

이 센터장은 소속 의사들이 자주 현장에 나가다 보니, 인권치유센터라는 이름이 시민단체와 인권 활동가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권의료센터 지원을 받는 환자들은 대부분 각종 인권·노동 관련 단체와 연계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지난해 8월 이집트 출신 난민 신청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가 진료를 간 적이 있었는데, 그들과 연대하던 활동가들이 '단식하면 녹색병원'하는 식으로 먼저 연락을 취해왔다"고 떠올렸다.

이 센터장은 "인권 피해를 본 사람들의 문제를 내가 직접 해결할 순 없지만, 늘 진료를 통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센터 인력 확충 등을 통해 인권피해자를 돕는 의료활동을 더 확대해나가겠다"고 전했다.

녹색병원 측에 따르면 2017년 9월 인권치유센터 개소 이후 지난해 말까지 인권피해자와 인권단체 관계자 등 250여명이 센터를 통해 의료지원을 받았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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