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대에서 4개 공연…시공간을 초월한 파격 연극 '더 헬멧'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민주화 항쟁이 전국에 들불처럼 번졌던 1980∼1990년대 군부 독재 시절.
고문, 폭행, 투쟁 등으로 점쳐진 그 시절을 모두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때를 살았던 이들도 자신이 겪은 단편만 알고 있을 뿐이다.
초연 때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연극 '더 헬멧: 룸스 Vol.1'이 8일부터 2월 27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S씨어터에서 재공연된다.
김태형 연출과 지이선 작가 콤비가 4개의 대본을 갖고 4개의 공연으로 구성한 '더 헬멧'은 한국 민주화 항쟁을 배경으로 한 '룸 서울'과 시리아 내전을 다룬 '룸 알레포', 2개 시공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룸 서울'은 1987년, 1991년 백골단(빅룸)과 학생(스몰룸)의 이야기로, '룸 알레포'는 2017년 화이트헬멧(빅룸)과 아이(스몰룸)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15일 진행된 프레스콜에서 '룸 서울' 공연 후 김태형 연출은 "공연을 수도 없이 보셨던 분들도 한 번도 보지 못한 형식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극은 하나의 큰 방에서 큰 그림을 보여주기도 하고, 벽으로 두 개의 방을 만들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한 공간에서 펼쳐 보이기도 한다.
공연들은 이어지거나 통일된 형식이 아니기 때문에 이 중 어느 것을 먼저 보거나 하나만 봐도 무방하다.
'룸 서울'에서 프랭크 시내트라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펼쳐지는 책방 주인의 고문 장면, 백골단과 학생 간의 몸싸움 장면은 그 시절의 비극을 한편의 오페라로 승화시킨다.
결국 '다 같은 애들'임에도 양극단에서 서로 갈등하고, 일부는 내적 갈등을 겪는 모습은 관객에게 왜 그 시대를 잊지 말고 끊임없이 되새겨야 하는지 일깨워 준다.
김 연출은 "'벙커 트릴로지'를 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이선 작가와 머리를 맞댔다"며 "초연 때 배우들과 다시 작업하고 싶었으나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이 큰 공연이라 3명만이 요청을 받아들여 새로 팀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좁은 공간에서 진행됨에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이 가득하다.
'룸 서울'에서 프랭크 시내트라의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백골단 대장과 학생 시고니의 액션신은 프레스콜 시연의 화룡점정이었다.
시고니 역의 김보정은 "액션신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돼 열심히 노력했는데 공연이 끝 날 때쯤 돼야 스스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공간이 분리됐다가 합쳐졌다가를 반복하는 만큼 이번 연극은 양쪽의 타이밍 조절이 중요하다.
김국희는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타이밍을 어떻게 맞춰 대사를 주고받아야 할지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며 "처음 리딩할 때는 덩치가 큰 양승리 배우가 너무 울어 다들 슬픈 와중에 배꼽 잡고 웃었다"고 돌아봤다.
이번 연극의 키워드인 '하얀 헬멧'은 '룸 알레포'에 등장하는 '화이트헬멧'(시리아 내전 현장에서 활동하는 민간 구조대)과 '룸 서울'에서 보여주는 '백골단'(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던 경찰 부대)을 동시에 뜻한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또는 죽이기 위해 쓰는 헬멧의 두 가지의 의미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김슬기는 "'룸 알레포'에서는 전쟁 분위기를 내기 위해 암전 때 서라운드 우퍼로 객석이 흔들리는 효과를 줬다"며 "크지 않은 무대이지만 정신을 뒤흔드는 전쟁의 참혹함을 느끼고 가셨으면 한다"고 바랐다.
김태형 연출은 "4개 중 어떤 공연을 봐야 하는지 묻는다면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보시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며 "시스템의 폭력에 맞서 일상을 지키려는 사람들이라는 큰 테마 안에 아이는 어른이 되고 싶고 학생은 학생답게, 경찰은 경찰답게 살고 싶다는 당연한 소망을 담았다"고 역설했다.
이번 재공연에는 초연 출연진인 이호영·이정수·한송희 외에 김종태·양승리·소정화·김보정·김국희·강정우·김슬기 등이 출연한다.
티켓 가격은 전석 3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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