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미투] 쇼트트랙 심석희 이어 유도 신유용 성폭행 폭로
솜방망이 처벌로 피해자 두 번 울렸던 체육 단체
무관심으로 대응하다 부랴부랴 대책 마련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 '미투'(Me Too·나도 당했다)가 체육계로 번지는 분위기다.
쉬쉬하며 감추기에 급급했던 체육계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체육계 미투는 쇼트트랙 현 국가대표 심석희(한국체대)가 지난 8일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면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심석희는 고소장에서 조 전 코치가 고교 2학년 때인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수차례 성폭행과 강제추행, 폭행을 범했다고 주장했다.
조 전 코치는 변호인을 통해 성폭행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심석희의 폭로로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됐다.
사실 체육계에서 용기를 낸 이는 심석희가 처음이 아니다. 이전부터 많은 피해자가 선수 생명을 걸고 성폭력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대한체육회와 산하 단체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성심성의껏 귀 기울이지 않았다.
솜방망이 처벌로 가해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줬다. 잠재적 가해자들에겐 범죄를 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2013년 제자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경기도의 한 쇼트트랙 실업팀 감독은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영구제명 처분을 받았지만, 이듬해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재심사를 통해 3년 자격정지로 감경됐다.
2007년 여자프로농구 모 감독은 소속팀 선수에게 성폭행을 시도해 영구 제명됐다. 그러나 대한농구협회의 추천서를 받고 중국에 진출해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14일 공개된 전 유도선수 신유용의 폭로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해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고교 재학 시절 지도자로부터 상습적인 성폭행 피해를 봤다고 밝히고 해당 코치를 고소했다.
대한유도회는 이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다. 한 유도인은 "유도계에선 이미 소문이 돌았다"라며 "관련 코치는 작년 3월부터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유도회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한유도회는 피해자와 피의자가 유도계를 떠났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신유용이 사회적인 관심을 받게 되자 대한유도회는 뒤늦게 성폭행 혐의를 받는 코치를 이사회에서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체육계 폭력·성폭력 사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한체육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폭력·성폭력·폭언으로 징계한 사건은 124건에 달한다.
그러나 심석희가 용기 있는 폭로를 결심할 때까지 한국 체육계는 자정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체육계는 뒤늦게 사과와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9일 "체육계 성폭력과 관련한 모든 제도와 대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고 대한체육회는 10일 전 종목에 걸쳐 현장 조사를 하고 스포츠 인권 관련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 개선하겠다고 전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과 대한유도회도 자체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는 체육계에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젊은빙상인연대와 문화연대, 스포츠문화연구소, 100인의여성체육인,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8개 단체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반복적으로 오랜 시간 학습된 침묵의 카르텔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들 단체는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지도자와 외부 시선에서 차단된 합숙 환경, 사고가 났을 때 묵인하고 방조하는 침묵의 카르텔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cycl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