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전산화사업 500억 입찰비리…전·현직 직원 5명 재판에

입력 2019-01-14 15:33
대법 전산화사업 500억 입찰비리…전·현직 직원 5명 재판에

퇴직자 업체에 내부기밀 흘려 '일감 몰아주기'…현직 직원들 6억대 뒷돈

법인카드 받아 생활비 쓰고 특정 모델 골프채 요구도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대법원의 전자법정 구축 사업 과정에서 500억원 규모의 입찰 비리가 벌어진 사실을 검찰이 확인했다.

현직 법원행정처 직원들은 퇴직한 직원이 경영에 관여한 특정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수년간 6억원대 뒷돈을 챙겼다가 덜미가 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구상엽 부장검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와 공무상 비밀누설, 입찰방해 등 혐의로 법원행정처 과장 강모·손모 씨와 행정관 유모·이모 씨를 구속기소 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들에게 뇌물을 주고 법원 전산화 사업 입찰을 따낸 전 법원행정처 직원 남모(47) 씨도 뇌물 공여, 입찰방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에 설치된 기관인 법원행정처는 인사·예산·회계·시설 등 법원의 각종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법원행정처 전·현직 직원들의 '검은 커넥션'은 전산주사보(7급)로 일하던 남씨가 2000년 퇴직한 뒤 납품업체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검찰 수사 결과 남씨는 법원행정처 동료들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20년 가까이 법원 발주 사업 수주를 독점한 것으로 조사됐다.

2008년 국정감사 당시 문제가 지적되자 부인 이름으로 세운 회사를 앞세웠다.

남씨가 경영에 관여하는 이 업체는 최근까지도 법정에서 문서를 화면에 띄워 볼 수 있도록 한 실물 화상기 도입 사업 등을 계속해서 따냈다. 남씨 관련 회사가 수주한 법원행정처 사업은 총 36건이며 계약금액은 497억원에 달한다.



법원행정처 현직 직원들은 입찰 정보를 빼돌려 남씨에게 전달하거나, 특정 업체가 공급하는 제품만 응찰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등 계약업체를 사실상 내정한 상태에서 입찰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물화상기의 경우 가격이 10분의 1 수준인 국산 제품이 있는데도 남씨 관련 회사가 판매권을 가진 외국산 제품을 납품받았다. 남씨는 수입원가를 2배로 부풀려 500만원에 실물화상기를 납품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대가로 강 과장은 5년간 총 3억1천만원, 손 과장은 2억5천만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행정관인 유씨와 김씨는 각각 6천700만원과 55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남씨 관련 업체에서 법인카드를 받아 생활비 등으로 3억원을 쓰고, 명절에는 5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TV 등 고급 가전제품과 골프채의 경우 모델명까지 구체적으로 지정해 받아낸 정황도 드러났다.

남씨 관여 업체가 법원행정처 입찰을 좌지우지하자 전산장비 납품업체들은 납품 기회를 얻어내기 위해 입찰 때 들러리 역할을 맡아주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업계에선 남씨를 통하지 않고는 법원 전산화 사업을 수주할 수 없다고 알려져 남씨에게 줄을 대기 위해 뒷돈을 주거나, 남씨를 통해 사업을 수주한 뒤 남씨 업체에 상당 부분을 하도급 주는 방법까지 동원됐다"고 밝혔다.

입찰 비리가 10년 이상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소수의 법원행정처 직원이 폐쇄적으로 입찰을 담당하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국가기관의 경우 조달청이 입찰업체에 대한 기술적 평가 등을 하지만 법원 전산화 사업의 경우 발주 제안부터 평가까지 모두 법원행정처가 관할했다.

법원행정처는 입찰 비리 의혹이 제기되자 내부감사를 벌여 지난해 11월 초 현직 직원 3명을 직위 해제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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