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m 높이 조명탑 망루서 494일째…그곳에 택시노동자가 있다

입력 2019-01-10 07:25
10m 높이 조명탑 망루서 494일째…그곳에 택시노동자가 있다

김재주 공공운수노조 택시지회장 '전액 관리제' 도입 촉구 농성

농성 500일 앞둔 김 지회장 "모든 택시노동자가 대접받는 그 날까지"



(전주=연합뉴스) 임채두 정경재 기자 = "춥고 외롭고 힘들지만 모든 택시노동자가 땀 흘려 일한 가치를 제대로 받는 날까지 이곳에 있겠습니다."

전북 전주시청 앞 노송광장의 10m 높이 조명탑 위에서 외로운 사투를 벌이는 노동자가 있다. 주인공은 김재주(57) 민주노총 택시노조 전북지회장.

김 지회장의 망루 농성은 2017년 9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택시 전액 관리제 시행을 차일피일 미루는 행정에 반발해 조명탑 위에 망루를 짓고 농성에 돌입했다.

김 지회장과 택시노조가 요구하는 '전액 관리제'는 쉽게 말해 '기사들에게 월급을 달라'는 것이다. 일부 택시법인들은 기사가 일일 운송수입 중 12만∼13만원을 회사에 입금하고 나머지를 갖는 '사납금제'를 고수하고 있다.

노조는 회사 납입을 강제하는 운송수입을 맞추기 위해 기사들이 과속과 난폭 운전을 일삼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들쑥날쑥한 수입 탓에 안정적인 가계를 꾸리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일부 택시법인은 "사납금제를 선호하는 택시기사도 많다"며 전액 관리제 전면 시행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김 지회장은 "이번에는 반드시 권리를 되찾겠다"며 기약 없는 투쟁에 들어갔다.



김 지회장이 머무는 망루는 성인이 간신히 누울 만큼 비좁다. 동료들이 준 낡은 침낭으로 한파를 버티고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스며드는 찬 바람은 매섭다.

여름에는 망루 안 온도가 40도를 훌쩍 뛰어넘는다고 한다. 에어컨과 선풍기 없이 김 지회장은 푹푹 찌는 폭염을 견뎠다.

식사는 동료들이 올려주는 반찬과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문화제와 천막농성 등으로 전액 관리제 시행에 힘을 보태는 조합원들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소통한다고 김 지회장은 말한다.

고공농성 동안 택시노조 조합원들이 전주시청 청사를 점거하는 일이 있었다. 지난해 8월 청사 4층 난간에 선 조합원 6명은 사납금제 폐지를 촉구하며 49일 동안 농성했다.

시는 여러 차례 퇴거 요청을 보내다가 "사납금제 등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을 위반하는 택시법인에 과태료 부과 등 강력한 행정처분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전액 관리제 전면 시행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다.

전주시는 약속대로 지난해 9월과 12월에 전주지역 택시법인 21곳 중 사납금제를 시행하는 19곳에 각각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했다. 법인 일부는 행정처분에 반발해 전주시에 이의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해가 두 번 바뀌도록 이어진 김 지회장의 망루 농성은 이달 16일로 500일째를 맞는다. 노동계에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김 지회장의 고공농성은 유례가 없는 최장 기록"이라며 "다가오는 500일 투쟁에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김 지회장은 10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투쟁을 시작했는데 도중에 중단하면 안 한 것만 못하다고 생각한다"며 "춥고 고되고 힘들어도 밤낮으로 고생하는 택시기사들이 제대로 된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 때까지 버티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얼마나 있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결과가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며 "전주시가 사납금제 폐지를 위해 일부 진전된 모습을 보이지만, 더 전향적인 태도로 법 위반 사업주를 처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jay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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