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현정 "바흐는 아버지·베토벤은 애인"
내달 2년 만의 리사이틀…바흐·베토벤으로 프로그램 구성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베토벤과 바흐의 세계에 스토커처럼 빠져들어 갔습니다. 그들에 관한 내용, 편지라면 샅샅이 다 뒤며 읽었어요. 그 탐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다음 달 26일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년 만의 리사이틀을 바흐와 베토벤으로 채운다.
임현정은 8일 종로구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클래식사의 기둥과도 같은 두 작곡가를 택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번 연주회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번을 시작으로 바흐 프렐류드와 푸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을 연주한다.
베토벤과 바흐는 피아노와 신약과 구약성서로 불릴 만큼 피아니스트들에겐 '거대한 산'으로 통한다.
전공생들에게는 입시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숙명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임현정은 "제게 바흐는 아버지, 베토벤은 애인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베토벤이라고 하면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는 초상화를, 바흐라고 하면 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성스러운 조각상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잖아요. 그러나 저는 그들의 희로애락이 제 안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그분들의 안쪽에서 뛰고 있던 심장은 내 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과 다를 게 없다고 믿습니다. 존경과 경외심으로 연주하는 게 아닌, 그들 속에서 끓고 있는 피를 생생하게 표현하고 싶어요."
그가 "스토커처럼" 작곡가들과 관련한 모든 것을 탐구하는 이유도 "베토벤과 바흐의 심장과 하나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의 말투와 생각은 늘 이토록 거침이 없다.
실제 그의 행보도 독특하다. 국내에서 유명 교수를 사사하고, 국내외 콩쿠르를 도전하며 인지도를 쌓아나가는 보통의 클래식 연주자와 달리 2009년 유튜브에 올린 림스키코르사코프 '왕벌의 비행' 연주 동영상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주를 펼치는 영상은 수십만건 조회 수를 기록했다.
유튜브에서는 스타였지만 여전히 정통 클래식 음악 시장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그는 2012년 세계적 음반사인 EMI클래식과 정식 계약을 하면서 또 다른 전기를 마련했다.
그의 데뷔 앨범도 신인으로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이었다.
이 음반은 빌보드 클래식 차트와 아이튠스 클래식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그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남이 뭐라고 하든 내가 무엇인가를 충실히 하고 최선을 다했다면 그게 어떤 파장을 일으키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이유로 사회적 발언이나 행동에도 활발히 나선다.
작년에는 유럽의 한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가 부당한 심사 결과에 항의하며 중도 사임을 하기도 했고, 인종차별 금지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어떤 것을 일부러 추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인생에 믿고 맡깁니다. 저 자신을 피아니스트란 이름에 한정 짓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다방면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려 해요. 교육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자연스럽게 하려 합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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