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동성 커플, 26개국 돌며 결혼사진 찍는다
성 소수자 권익 보호 & 동성혼 인정 사회 분위기 조성 목적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세계 26개 나라를 돌면서 결혼사진을 찍으렵니다."
일본의 한 동성 커플이 성 소수자인 LGBT가 '보통 사람'임을 알리기 위해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26개 나라를 돌면서 웨딩사진을 찍기로 하고 모금에 나서 주목을 받고 있다. LGBT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뜻하는 말이다.
주인공은 도치기현(縣) 소재 우쓰노미야대학 국제학부 3학년생인 가와사키 미사토(21)와 오타키 마유(22).
오는 3월에 6개월 일정의 대장정에 오르는 두 사람이 이 프로젝트를 계획한 것은 자신들의 웨딩사진을 보여줌으로써 성(性) 정체성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이 계획은 오타키가 먼저 제안했다.
그는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상황을 보여주면 아직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사회 분위기도 조금씩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2017년부터 데이트를 시작했다.
가와사키는 고교 시절부터 자신이 동성 여성을 더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지만 비정상인 취급을 받는 것이 두려워 성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가와사키의 파트너가 된 오타키도 고등학생 때부터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게 됐다.
두 사람이 사귄 지 수개월 만에 "나랑 함께 영원히 있어 줄래?"라고 먼저 프러포즈를 한 사람은 가와사키였다.
그러나 두 사람 앞에는 결혼하더라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본 사회 분위기가 큰 장애물로 놓여 있었다.
일본에선 일부 지자체가 동성 혼인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합법화되지 않은 상태다.
두 사람은 일본에서도 성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 모두가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힘을 모으기로 했다.
그런 배경에서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 놓고 시작한 것이 다른 사람들과 느낌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블로그와 SNS였다.
두 사람은 가족과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본인들의 성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았다. 우쓰노미야대학 캠퍼스와 도치기현 닛코의 도쇼구 진자(神社)에서 함께 찍은 웨딩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다.
두 사람은 더 나아가 동성 결혼이 인정되는 26개국을 돌면서 웨딩사진을 찍는 해외여행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웨딩 사진을 찍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정부 관계자들도 만나 동성혼 합법화 문제 등에 대한 얘기를 들어볼 계획이다.
여러 나라에서 찍은 웨딩 사진과 인터뷰 내용 등 자신들의 활동상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할 생각이다.
올 3월 하순 영국에서 시작해 9월까지 유럽, 아프리카, 북미, 남미 지역의 동성결혼 인정 국가를 차례로 방문하는 꿈에 부푼 두 사람이 풀어야 할 문제는 또 있다. 바로 비용이다.
애초 계획한 6개월 여정을 소화하려면 교통비와 숙박비를 최대한 아껴 쓴다고 해도 한 사람당 200만엔(약 2천만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아르바이트해서 모아놓은 돈이 있긴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문을 두드렸다.
일본의 대표적인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파보'(FAAVO)에 "동성애를 인정한 해외 26개 나라에서 웨딩사진을 찍는 세계 일주 여행에 나섭니다"라는 문구로 코너(https://faavo.jp/tsukuba/project/3410)를 만들어 모금에 나선 것이다.
모금 마감일을 59일이나 앞둔 4일 현재 모금 목표액(100만엔)의 32%를 채울 정도로 반응은 괜찮다.
한 네티즌은 해당 사이트에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두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길 응원합니다"라고 적었다.
아사히신문은 해외여행 후에 경험담을 공유하는 모임을 여는 등 일본 내의 동성혼 합법화 운동에 한층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인 두 사람이 성 소수자만을 위한 결혼서비스 전문 회사도 세울 계획이라고 전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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