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영 "9초대의 꿈, 포기할 수 없어요"
"2018년 AG·전국체전 아쉬움, 2019년 도약의 동기부여"
"2019 세계선수권 준결선 진출 목표…9초대 숙원도 꼭"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한국을 대표하는 스프린터 김국영(28)에게 2018년은 무척 잔인했다.
8번의 레이스를 치른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아시아 무대의 벽을 느꼈고, 전국체전에서는 부상으로 대회 일정을 소화하지 못했다.
굳건히 버텨오던 김국영도 심적, 신체적으로 지쳤다. 하지만, 좌절에 빠진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가 재활 훈련을 하는 4일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에서 만난 김국영은 "제가 원래 한 번 좌절한 뒤에 다시 성과를 내는 선수거든요"라고 웃었다.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지원해 최종 합격 통보를 기다리고 있는 그는 "만약 상무에 합격하면 군 생활 중에도 뛸 기회가 있는 거잖아요. 일반병으로 군 생활하는 다른 분께 미안한 마음까지 더해서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라며 "지난해 못한 걸, 올해는 꼭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 "좌절한 뒤 일어섰던 2015년, 2017년처럼" = 입대를 앞둔 젊은 남성들 대부분이 '휴식'을 택한다.
하지만 김국영은 다르다. 지난해 10월 전국체전 남자 200m 예선 중 종아리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한 김국영은 곧바로 재활에 돌입했고, 재활 막바지 단계에 돌입하자 일본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국내로 돌아온 뒤에도 쉴 틈 없이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입대 전까지도 훈련을 계속할 생각이다.
김국영은 "아시안게임과 전국체전을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너무 허무한 결과가 나왔다"며 "그래도 좌절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오히려 2018년의 실패가 2019년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됐다. 문제점을 파악했고 고쳐가는 중이다. 준비 과정은 2018년 초보다 지금이 더 좋다"고 했다.
한국 남자 100m 기록 보유자(10초07)이자, 남자 단거리를 대표하는 김국영은 많은 기대 속에 아시안게임을 치렀다. 자신도 시상대에 오르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 종목인 100m 결선에서 10초26으로 8위에 그쳤다. 8월 26일 결선이 끝난 뒤, 김국영은 눈물을 쏟았다.
마음을 추스르고 나선 200m에서는 20초59로 잘 뛰었지만, 3위에 0.04초 뒤진 4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눈앞에서 개인 첫 아시안게임 메달을 놓친 김국영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김국영이 3번 주자로 나선 400m 계주에서 한국은 39초10으로 5위에 그쳤다.
100m, 200m 예선·준결선·결선, 400m 계주 예선·결선까지 총 8차례 역주를 펼친 김국영은 허탈한 심경으로 자카르타를 떠났다.
김국영은 아버지, 형과도 같았던 심재용 광주광역시청 감독, 박태경 코치를 떠올리며 전국체전을 준비했지만 지친 몸이 버티지 못했다. 김국영은 100m에서 2위를 했고, 200m 결선에서 출발선에만 섰다. 400m 계주에는 나서지도 못했다.
김국영은 "팀 동료와 함께 뛰는 계주에 나서지 못해 죄송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좌절감을 떨쳐냈다. 김국영이 포기하면, 한국 육상 남자 단거리도 경쟁력을 잃는다.
김국영은 과거에도 책임감으로 좌절을 극복하고, 한국 남자 100m 역사를 새로 썼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결선 진출에 실패한 김국영은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10초16의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신 뒤, 김국영은 2017년 6월 10초07의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 그리고 2017년 8월 런던 세계육상선수권에서 한국 남자 육상 100m 최초로 준결선에 진출했다.
김국영은 "내 과거를 돌아보면 좌절을 겪은 뒤, 더 좋은 성과를 냈다. 2018년 실패했던 경험도 내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했다.
◇ "세계선수권 준결선에 한국 선수가 있어야 하잖아요" = 사실 김국영은 지난해 8월 아시안게임에서 왼쪽 발목 통증을 안고 뛰었다. 대회 당시에는 공개하지 않았던 비밀이다.
김국영은 아시안게임 개막을 2주 정도 앞둔 8월 초 훈련 중에 왼쪽 발목 인대를 다쳤다. 부기가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회를 치렀다.
김국영은 "누가 밀어서 다친 것도 아니고…. 부상도 결국 내 책임이다. 그래서 굳이 대회 중에는 이야기하지 않았다"며 "대회 직전 부상을 당했을 때 박태경 코치께서 '2주는 충분한 시간일 수 있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고 차분하게 나를 이끌어주셨다. 그 덕에 나도 당황하지 않고 '이 정도는 괜찮다. 아프지 않다'고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실제로 크게 아프지도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의 상처에는 담담한 김국영도 '한국 육상의 자존심'을 떠올리면 피가 끓는다.
올해 9월 27일, 카타르 도하에서 2019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 김국영의 목표는 100m 준결선 진출이다.
김국영은 "아시아 육상 남자 단거리가 세계 수준에 많이 접근했다. 아마도 2019 세계선수권 100m 준결선 진출자 24명 중 8명은 아시아 선수일 것"이라며 "중국, 일본, 대만 선수가 준결선에 진출하는 데 한국 선수가 없다면 자존심이 상하지 않겠나. 꼭 준결선에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세계선수권에서 2회 연속 준결선에 진출하면 한국 육상의 역사가 또 바뀐다.
준결선 진출 전에 김국영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기준기록 통과다. 2019 세계선수권 남자 100m 기준기록은 10초10이다.
그동안 세계선수권, 올림픽 남자 100m 기준기록은 한국 기록보다 높았다. 김국영은 그 벽을 넘어섰다.
김국영은 2015년 7월 10초16의 한국 기록을 세우며 2015 베이징 세계선수권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기준 기록(10초16)을 통과했다.
2017년 6월에는 10초07의 또 한 번 한국 기록을 경신하며 2017년 런던 세계선수권 기준 기록(10초12)을 넘어섰다.
2019년 도하 대회는 한국 기록보다 낮은 기록으로도 기준을 통과할 수 있다. 기한은 올해 9월 7일까지다.
10초10도 쉽지 않은 기록이지만, 한 차례 10초07을 기록한 김국영은 예전보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메이저대회 기준기록 통과를 노린다.
◇ "모두가 안 된다고 하시지만, 저는 9초대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 김국영의 인생 목표는 '9초대 진입'이다.
김국영이 '9초대의 꿈'을 이야기할 때마다 '한국인은 불가능하다'라는 말이 들렸다.
하지만 김국영은 "모두가 안 된다고 말씀하셔도, 나는 포기할 수 없다. 포기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김국영은 9초대에 진입한 아시아 선수들을 보며 자극받는다. 특히 9초91의 아시아 타이기록을 세우고, 9초92의 대회 신기록으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100m에서 우승한 쑤빙톈(중국)은 살아있는 교과서다.
김국영은 "쑤빙톈의 예전 코치와 대화한 적이 있다. 쑤빙톈은 정말 성실하고 뛰어난 선수다"라고 상대를 예우하면서도 "비슷한 체격 조건을 지닌 동양인인 쑤빙톈이 9초대를 여러 번 뛰었다. 오늘의 쑤빙톈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건 아니다. 나도 꾸준히 노력해 9초대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김국영이 2010년 6월 7일 전국육상선수권 예선에서 10초31로 고 서말구 교수의 기록(10초34)을 31년 만에 넘어서고, 같은 날 열린 준결선에서 10초23으로 또 한 번 기록을 갈아치웠을 때 "이게 김국영이 만들 수 있는 최고 기록"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김국영은 한국 최초로 10초1대, 10초0대 기록을 세웠다.
여전히 10초07을 김국영이 낼 수 있는 최고 기록이라고 평가하는 이도 많다.
김국영은 그런 냉정한 평가도 넘어설 생각이다. 그는 "내가 보여드린 게 많지 않으니 그런 평가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겠다. 그리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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