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여전히 유효한 그시대의 비정상들…'내가 사랑한 캔디'

입력 2019-01-03 06:01
우리시대 여전히 유효한 그시대의 비정상들…'내가 사랑한 캔디'

백민석 작가 소설…'불쌍한 꼬마 한스'와 합본해 재출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동성끼리 이런다는 거, 어쩐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만 같아."'(55쪽)

사귄 첫해, 나의 고백에 캔디는 "칫, 그게 어쨌다는 거야?"라며 물기가 어린 눈망울로 말한다.

기존 질서에서 벗어난 서로의 사랑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소년들 모습은 기존 문학적 풍속을 일그러뜨리며 등장했다고 평가받는 백민석 작가의 소설을 대변하는 듯하다.

'불쌍한 꼬마 한스'와 합본해 한겨레출판에서 최근 재출간한 백 작가의 '내가 사랑한 캔디'(1995년 작)는 시대를 앞서간 동성애 소설이다.

사회 변화에 따라 문학계에도 김봉곤의 '여름, 스피드',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등 퀴어 소설이 등장했으나, '내가 사랑한 캔디'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동성애 소설은 많지 않았다.

작가가 10년간 절필 후 2013년 복귀했을 때도 여전히 그를 동성애자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동성애 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그 시대에는 파격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의 초상을 그린 '내가 사랑한 캔디'에는 동성애 외에도 그 시대의 많은 것이 담겼다.

학교를 떠나는 전교조 교사들, 최루탄 연기가 가득한 학생들의 투쟁, 비디오테이프와 할리퀸 문고, 싸구려 다방 그리고 이제는 세상을 떠난 조지 마이클.

그런 속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나'와 캔디의 사랑은 이질적이다.

딱지를 떼러 창녀촌에 가서 발기부전을 겪는 것은 '정상'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소년인 그들의 사랑은 '뽀뽀는 그만하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던 다방 DJ의 말처럼 '어른'이 되려면 멈춰야 한다.

대학생이 된 그들은 첫사랑인 서로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별의 길을 걷는다.

흰색 최루가스로 된 구름 기둥 밑에만 있는 내게 그 기둥은 '어떤 난처하고 무용하고 심지어 끔찍하기까지 한 일들이 종종 벌어'진다는 것의 상징이지만, 먼 곳에서 조망하는 캔디에게는 '아름답고 따듯하고 위대해 보이는' 모습일 뿐이다.

"함께 구름 기둥 밑에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한 캔디는 대학에서 만난 '푸른 갈색 눈동자'를 지닌 여자 '희'와 연애를 시작한다.

어느 날 한 카페에서 캔디가 희에게 "첫사랑과 끝났다"고 하는 말을 들은 나는 그가 '캔디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보인다고 느낀다.

그렇게 그는 마음속에서 캔디를 죽이며 '우리, 불쌍한' 어린 시절과 작별한다.

'나는 웃음이 터져서 더는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잠시 후, 나는 마침내 이렇게 소리 질렀다. "캔디가 죽었어요!" "캔디가 죽었단 말이에요, 방금!"'(172쪽)

함께 실린 '불쌍한 꼬마 한스'는 '내가 사랑한 캔디'에서처럼 '도서관 소년'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이다.

어린 시절 도서관 창밖에서 본 '생선 가시'에 대한 정신과 의사의 여러 가설을 들으며 '나'는 실망한다.

나는 결국 '생선 가시'가 실재하는 미지의 괴물이라고 여기기로 하고, 어릴 적 처음 '생선 가시' 얘기를 들려준 도서관 사서의 '너 쪼다야?'라는 반응이 다시 나올까 두려워 아무에게도 그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내가 데이트하기 시작한 '선애 씨'는 얼핏 보기에는 희망, 혹은 믿음을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선애 씨는 어둠보다 더 어두운, 고양이와 가까운 무언가를 보는 나와 동류의 사람이다.

비슷한 경험과 감각을 공유하며 둘은 묘한 위안을 느끼지만, 서로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며 고통과 죽음 한가운데 섰던 선애 씨는 IMF 외환 위기가 터진 어느 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떠난다.

소설이 나온 지 20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팍팍하고, 누군가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지금을 떠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나'와 선애 씨가 그랬던 것처럼 조금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각자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위로받을 누군가가 여전히 필요하다.

'이젠 누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않을 자신이 있어. 요즘 내가 하는 생각이다. 정말 그럴까?'(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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