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에 동시행동 압박하며 '中참여 평화체제 협상' 제시
북미정상회담 화답하며 '새로운 길' 경고도…협상판 주도 의도
'정전협정 당사자' 평화체제 협상 제안…中참여주장 공식화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통해 대미협상 의지를 거듭 확인하면서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을 교환하는 '단계적·동시적' 행동에 나서자는 메시지를 미국에 보냈다.
미국의 2차 북미정상회담 제의에 호응하는 동시에, 정전협정 당사자들의 '평화체제 전환 다자협상'이라는 구체적 체제안전 보장 '행동'을 거론하면서 정체된 북미협상을 주도해 나가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된 육성 신년사에서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미국은 최근 북미협상의 교착상태에서도 올해 초 제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공개적으로 거론해 왔다.
김 위원장도 이에 '공개 화답'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또다시 회담하게 된다면 이번에는 구체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북한 매체는 지난 10월 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보도 당시 '예정된 제2차 조미수뇌회담'을 언급하며 추가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북미 고위급회담이 연기되면서 협상 동력이 다시 잦아든 상황임에도 북미 정상이 추가 정상회담 의지를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에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의 불변한 입장이며 나의 확고한 의지"라며 현 북미협상의 '대전제'인 북한의 비핵화 의향도 재확인했다. 김 위원장이 2012년 집권 후 신년사에서 '비핵화'를 직접 언급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정상 간의 신뢰'를 동력으로 이어져 온 북미협상 기조를 올해도 기본적으로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북한 최고지도자 차원에서 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신뢰 표시이자 '톱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신년사는 북한이 어디까지나 '단계적·동시적' 행동 원칙에 입각한 협상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미국의 '신뢰성 있는 조치'와 '상응한 실천행동'을 요구하고, "쌍방의 노력에 의하여 앞으로 좋은 결과가 꼭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고 싶다"고 강조했다. 결국 미국의 상응조치가 없다면 추가 비핵화 조치를 위해 움직이기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미국이 일방적 제재·압박을 계속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현 국면을 소중히 여겨야 할 공동의 책임"이 있다고 언급한 것은 대미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의도된 메시지로 보인다.
현재의 협상판에서 이탈하지는 않겠지만, '만일 판이 깨진다면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입장을 선제적으로 밝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양보만을 하지 않을 것이며 원칙과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맥락에서 김 위원장이 이날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아래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자고 공개 제안한 것은 의미가 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협상을 개시한다면 이는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이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을 위해 취하는 구체적인 행동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과도적 체제안전 보장 조치라고 할 수 있는 종전선언을 지난해 한동안 미국에 요구했지만, 하반기 들어서는 방향을 선회해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데 집중한 바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완전한 비핵화에 따르는 상응조치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제는 실천에 옮길 때가 됐다는 것"이라며 "다자협상을 시작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이제는 실질적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 위원장이 사실상 중국의 참여를 가리키는 '정전협정 당사자'를 거론하면서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 중국이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것도 주목된다.
정전협정 당사자들의 '연계'는 결과적으로 남·북·미·중 4자 간의 협상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체제안전 보장을 위한 평화체제 전환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북한이 중국을 '안전판'으로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포석일 수 있다.
특히 올해가 북중수교 70주년이 되는 해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가능성도 커 북·중 간의 전략적 협력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교수는 "미국에 대한 압박메시지와 중국에 대한 협력 메시지가 동시에 담긴 전략적 접근"이라고 말했다.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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