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2019년은…'블레이드 러너' '아일랜드'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영화는 현실을 한발 앞서간다. 영화가 오래전 상상으로 구현한 수많은 첨단 기술이나 미래상은 세월이 흐른 뒤 우리 일상 속 풍경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 비친 2019년 모습은 어떨까.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와 '아일랜드'(2005)는 2019년이 배경이다. 이들 두 작품에 비친 올해 모습은 안타깝게도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온통 잿빛이고 암울하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만들어진 복제 인간이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변해 '진짜' 인간들에게 '너와 내가 무엇이 다른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복제 인간의 등장은 아직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두뇌와 노동력, 인간관계마저 대체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두 영화가 그린 미래상은 예사롭지 않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블레이드 러너'는 할리우드 SF영화의 고전으로 꼽힌다. 37년 전 작품이지만, 지금 봐도 세련된 비주얼과 묵직한 주제의식,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느껴진다. 오히려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개봉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다가 뒤늦게 빛을 본 작품 중 하나다.
2019년 인간들은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을 개척해 이주한다. 다른 행성을 식민지화하는 데는 복제 인간들이 사용된다. 그중 최신형 복제 인간인 '넥서스6' 계열이 행성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지구로 잠입한다. 이들은 고작 4년뿐인 자신들의 수명을 연장하려 '인간 창조자'를 찾아 나선 것이다.
전직 '블레이더 러너'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강제로 복직해 복제 인간들을 찾아 '폐기'하는 임무를 맡는다. 데커드는 수사 도중 자신이 복제 인간임을 모르는 레이철(숀 영) 덕분에 목숨을 건지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천루와 네온사인이 가득한 미국 로스앤젤레스(LA)가 극 중 무대다. 사이렌을 단 경찰 비행기를 비롯해 도심 하늘에는 자가용 비행기들이 날아다닌다.
거리에는 일본식 간판이 즐비하고, 차이나타운도 보인다. 동서양 문화가 혼재돼 국적을 가늠하기 어렵다. 영화는 시종일관 어두컴컴하고 비가 내리는, 지저분한 도시를 비추며 버려진 지구를 묘사한다.
이 영화에는 유독 눈에 관한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복제 인간을 구분하는 방법도 동공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하는 것이다. 반대로 복제 인간이 진짜 인간을 처치할 때도 눈을 공격한다. 마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암살용, 전투용, 위안용 등 다양한 용도로 개발된 복제 인간들은 감정을 스스로 발전시켜 인간처럼 미움, 사랑,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지닌 복제 인간을 통해 결국 우리는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등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을 한다.
2017년에는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제작돼 개봉했다. 리들리 스콧이 제작자로, 원년 멤버인 해리슨 포드가 참여했다. 속편 메가폰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컨택트'(2017)로 호평받은 드니 빌뇌브 감독이 잡았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아일랜드'는 대형 지하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수천 명의 사람은 이곳에서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정해진 시간에 운동하고 철저한 통제 속에서 지낸다. 지구 오염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이들은 지상낙원인 '아일랜드'에 가기 위해 대기 중이다. 매일 추첨에서 선발된 한두명만이 아일랜드로 갈 수 있다.
주인공 링컨 6-에코(이완 맥그리거)는 환기통으로 날아 들어온 나비를 보고 지구가 오염됐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는다. 나비를 뒤쫓던 그는 자신이 복제 인간이며 '아일랜드행'은 결국 죽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친한 친구인 '조던 2-델타'(스칼릿 조핸슨)와 탈출을 시도한다.
'블레이드 러너'처럼 인간복제를 다루지만, 복제 인간의 탄생 모습은 훨씬 더 무섭게 그린다. 거대한 양수 주머니에서 배양되는 이들은 의뢰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태어나 대리모, 장기 및 피부 이식에 사용된 뒤 '폐기'된다. 수명을 늘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들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 작품은 난치병 치료라는 긍정적인 면과 인류 혼란이라는 부정적인 면 두 가지를 모두 강렬하게 보여줌으로써 화제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내 개봉 당시에는 '황우석 효과' 덕을 보기도 했다. 2005년 당시 황우석 박사의 줄기 배아세포 연구가 주목받으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져 약 320만명이 관람했다. 제작진 역시 미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황 교수의 연구 결과를 보고 21세기 후반이었던 영화 속 설정을 더 앞당겼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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