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교착 타개할 모멘텀 될까…김정은 신년사에 쏠리는 美 시선
비핵화협상 향배 가를 중대 분수령…2차 핵담판 시간표에도 영향
돌파구 못찾으면 '민주 하원장악' 속 트럼프 운신 폭 좁아질수도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북미대화 재개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2019년을 맞이하는 미국의 시선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내년 1월 1일 신년사에 집중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침묵을 깨고 발신할 새해 벽두 메시지가 교착상태인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기상도를 좌우할 중대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올해 신년사가 이른바 '핵 단추 말 폭탄' 주고받기로 이어지며 북미 간 긴장지수를 최고조로 높였다면, 내년 신년사는 지난 1년간 극적인 변화를 겪은 뒤 '제재 갈등'에 주춤하고 있는 북미 관계의 미래와 비핵화 전망을 가늠할 풍향계가 될 전망이다.
비핵화 실행조치와 관련된 '통큰' 약속들이 담긴다면 제재 신경전에 막혔던 북미교착을 뚫을 중대 모멘텀이 되면서 2차 북미정상회담 조기 개최도 한층 더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반대의 경우는 미국의 셈법이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김 위원장은 이번 신년사를 통해 북미가 화해 모드를 이어갈지 아니면 대결 국면으로 되돌아갈지에 대한 신호를 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대북제재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김 위원장의 불만과 좌절감의 '크기'도 감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외교 전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네이셔스는 '트럼프가 북한과의 협상을 되살릴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김 위원장이 긴장 국면으로 '유턴'하려 한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면서 그가 거친 레토릭으로 애를 먹이기보다 대미 협상에 있어 보다 솔직한 태도로 나온다면 견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문가 전망을 소개했다.
외교소식통은 29일(현지시간)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기다려온 트럼프 행정부로선 김 위원장의 신년사 내용이 비핵화 협상의 향배를 가를 바로미터로서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며 "그만큼 촉각을 세우고 내용을 주시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국이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한 미국인 방북 허용 검토, 남북철도 연결 착공식을 위한 제재 면제 동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북한 인권 관련 연설 취소 등 일련의 '유화 체스처'를 보인 것도 신년사를 앞둔 국면 관리 차원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행 제재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인도적 지원과 남북 협력 분야에서 성의를 표시함으로써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비핵화와 관련된 보다 적극적 메시지를 견인하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그네이셔스도 "트럼프 행정부의 최근 제스처들은 분명히 김정은으로부터 상응하는 반응을 구슬리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미국 측이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전례 없는 '톱다운'식으로 진행되는 현 북미 대화의 특수성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동안 '친서 외교를 비롯한 북미 정상 간 핫라인을 통해 대화의 끈을 이어온 측면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볼 때 이번 신년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여러 차례 '타전'한 대북 메시지에 대한 김 위원장의 '답신' 성격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성탄 전야인 24일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등 북한 관련 팀의 보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트위터에 공개하고 "진전은 이뤄지고 있다. 김 위원장과의 다음 정상회담을 고대하며!"라고 '조기 재회'의 기대감을 내비친 바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최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새해 첫날로부터 그리 머지않아' 열릴 것으로 믿는다고 밝히는 등 트럼프 행정부의 최고위 인사들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기정사실화하며 북측 달래기에 나선 모양새이다.
제재문제에 대한 불만 등으로 고위급이나 실무회담보다는 정상 간 '직접 담판'을 통해 문제를 풀고 싶어하는 북한을 안심시킴으로써 궤도이탈을 막으려는 차원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 외교가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전향적 메시지를 발신하며 북미 정상 간 조기 만남에 대한 의지를 내비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 등을 통해 '즉석 화답'을 하면서 2차 정상회담개최 문제가 '급물살'을 타는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다.
2차 북미정상회담 추진이 탄력을 받게 되면 구체적 의제와 장소, 날짜 등 실행계획(로지스틱스)을 다듬을 실무협상 등 후속 논의도 재개될 전망이다.
특히 미국이 요구해온 비핵화 초기 실행조치 등에 대한 진전된 내용이 신년사에 담길 경우 미국 측도 비건 특별대표가 언급한 '추가 신뢰 조치', 즉 상응 조치들을 꺼내면서 양측간 조합 맞추기가 속도를 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신년사에 비핵화 관련 진전된 메시지가 담기지 않을 경우 당장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미국 조야의 회의론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내년 1월3월부터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는 미국 의회의 지형 변화도 트럼프 행정부의 운신 폭을 좁게 할 수 있다. 민주당이 수적 우위를 등에 업고 관리·감독권 강화를 시도, 트럼프 발(發) 대북 관여 드라이브 속도에 제동을 걸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로선 그만큼 성과에 대한 확실한 담보 없이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나서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고, 제재 갈등에 대한 묘수 찾기도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인내할 준비가 돼 있다"며 장기전 모드를 다져오긴 했지만, 교착 상황이 길어지면 강경론 선회에 대한 압박도 더 커질 수 있다.
이그네이셔스는 "지난 수개월 동안 워싱턴은 구체적 비핵화 로드맵을 기다려왔다. 로드맵이 없는 채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 회담과 비슷하게 현란하기만 한 방식으로 열린다면 역풍만 맞을지 모른다"며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전반적으로 공격을 받는 가운데 그만큼 국내 여론의 뒷받침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비판자들마저 군사적 대치로 되돌아가는 건 실수라고 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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