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달군 가짜뉴스 키워드…'북한·난민·탈원전'
'아니면 말고' 식 루머 생산 차원 넘어 '확증편향' 확산
일부 정치인도 떠도는 낭설 옮겼다가 여론 뭇매 맞기도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김수진 기자 = 올해는 '가짜뉴스'가 온라인을 부쩍 달군 한 해였다.
유령처럼 아무 실체가 없는 가짜뉴스는 온라인 커뮤니티, 메신저, 유튜브,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소리·소문 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지난 3월 한국언론진흥재단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천50명 중 69.2%가 '소셜미디어에서 유포된 뉴스 형식의 조작·거짓 정보를 보거나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가짜뉴스를 퍼뜨릴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난 데다 유튜브 등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가짜뉴스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중요한 국가적 이슈를 소재로 그럴듯한 의혹을 만들어내는 가짜뉴스는 '아니면 말고' 식 루머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에 확증편향(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만 받아들이는 경향성)을 확산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폐해는 가늠조차 어렵다.
연합뉴스는 올해 논란에 불을 댕긴 가짜뉴스 키워드를 몇 가지로 추려봤다.
◇ 가짜뉴스 단골 소재 '북한'
올 한 해 우리나라에서 가짜뉴스 소재로 가장 많이 등장한 키워드는 단연 '북한'이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를 중점적으로 추진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을 열고 제주 감귤 200t을 북한으로 보내는 등 대북 유화 정책을 펴자 '북한에 몰래 퍼주기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가짜뉴스가 횡행했다.
특히 지난 8월 국민연금 장기재정 추계결과와 제도개선안 발표로 확산된 우려와 맞물려 '국민연금으로 북한 경제재건을 한다' '북한이 국민연금 200조원을 달라고 요구했다'와 같은 내용의 글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블로그를 떠돌았다.
그러나 국민연금 운용 현황은 국민연금기금운용지침에 따라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되며, 매달 업데이트 된다.
이달 올라온 내역을 보면 약 654조원(9월 말 현재)에 이르는 기금 중 절반 상당인 331조원가량은 채권에 투자돼 있고, 38%(약 249조원), 10%(약 71조원)가량은 각각 주식, 대체투자로 운용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그 어떤 형태로 거래가 이뤄지든 전산 시스템에 기록이 남고, 이에 대해 내·외부 감사를 받기 때문에 공시와 다르게 운용할 방법이 없다.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기도 하다.
북한에 귤을 보낸 것을 두고 '미군의 눈을 피하려 군 수송기로 보냈다', '북한에 엄청난 양의 귤을 보내 귤값이 폭등했다', '귤을 보낸 것은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이라는 취지의 가짜뉴스가 나돌았다.
확인결과 200t은 올해 제주산 귤 47만7천 톤의 0.04% 정도 수준으로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고, 군 수송기든 육로를 통한 방북이든 미군이 그 내용물을 검색하는 것은 한미 동맹체제에서 있을 수 없으며, 정부의 승인을 받은 인도적 대북지원은 제재 대상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인 김미화씨가 북한 철도 연결 사업을 하는 정부 기구의 요직을 맡고 있다는 가짜뉴스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가짜뉴스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떠돌다가 바른미래당 이언주 의원이 '김미화 남북철도추진위원장'을 현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사례로 들면서 파장이 커졌는데, 확인결과 남북철도추진위원회라는 기구나 단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김 씨는 지난 4월부터 남북철도 연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민간단체의 요청으로 '동해북부선 연결 추진위원장'을 맡았을 뿐이며, 이 단체는 정부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 제주도 예멘인 입국 계기로 난민·이슬람 낭설도 넘쳐
난민과 관련한 낭설도 올해 유독 온라인을 달궜다. 몇 년 전부터 난민 유입이 급격히 늘어난 유럽에서는 이러한 가짜뉴스가 등장한 지 꽤 오래됐지만, 국내에서는 지난 5월 제주도 무사증(무비자) 제도를 이용해 예멘인 수백명이 입국하면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예멘인들이 입국한 직후 온라인 카페, 블로그 등에는 "정부가 제주 예멘 난민에게 매월 138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주장이 널리 퍼졌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난민이 생계비 지원을 신청할 수는 있지만 심사를 통과해야 하며, 지원이 결정돼도 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1인당 월 43만원 정도다. 138만원 지원설은 난민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5인 가구에 지원되는 총액이 138만6천900원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오해로 보이며, 가구 구성원이 5인을 넘어서도 이 금액은 같다.
당시 연합뉴스를 비롯한 여러 언론사가 난민과 난민신청자를 둘러싼 루머에 대해 팩트체크 기사를 보도했지만, 새로운 가짜뉴스는 계속 재생산됐다.
지난 7월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 간 30대 여성이 변사체로 발견되고 얼마 뒤 온라인에는 '제주 연쇄 실종'이라는 출처 불명의 게시물이 등장했다. 5건(1건 중복)의 여성 변사 사건에 대해 적은 이 게시글은 "제주도에서 난민을 받은 뒤 한 달 동안 여성 6명이 실종됐다"는 글과 함께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됐다.
그러나 제주 경찰 확인결과, 이 게시물에 나온 변사 사건 5건 중 2건은 거짓이었고, 실제로 발견된 변사체도 모두 타살 혐의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예멘 난민 문제와 맞물려 이슬람 포비아(이슬람 혐오)를 조장하는 게시물도 SNS에 널리 퍼졌다.
특히 '코란에서 가르치는 이슬람의 13교리'라는 제목으로 '사춘기 시작 안 한 여자아이를 강간, 결혼, 그리고 이혼해도 된다' '무슬림이 아닌 사람을 죽이면, 천국에서 72명의 처녀를 상으로 받는다'와 같은 내의 게시물이 온라인 카페 등에 떠돌았으나 코란 한국어 번역본들과 비교한 결과 실제 코란과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또한 SNS에 '무슬림에게 성폭행당한 유럽 여성들'이라는 제목으로 확산한 사진 역시 가짜로 판명됐다.
사진의 주인공들은 경찰에 체포된 뒤 폭행당한 미국 여성, 조깅 도중 자국 남성들에게 공격당한 캐나다 여성, 남편에게 맞은 미국 여성, 남자 친구에게 폭행당한 영국 여성 등 무슬림과 관련 없는 폭행 사건의 피해자로 드러났다.
◇ 태양광 설비는 중금속 범벅?…탈원전·태양광 '괴담' 무성
탈원전과 태양광 발전 등 에너지 정책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나 근거 없는 주장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탈원전 정책과 맞물려 태양광 발전 사업이 확대되면서 태양광 패널이 발암물질을 함유한 '중금속 덩어리'라는 등 태양광 설비의 부작용에 관한 각종 '괴담'이 잇따랐다.
하지만 각종 기관의 연구보고서나 공인 시험인증기관들의 시험 결과를 보면 이런 주장 중에는 과장되거나 사실과 다른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에 보급된 태양광 모듈은 대부분 결정질 실리콘(C-SI) 태양전지를 사용한 모듈로, 유리(76%), 폴리머(10%), 알루미늄(8%), 실리콘(5%) 등이 주요 구성성분이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발암물질인 카드뮴은 전혀 포함돼 있지 않으며, 구리, 납 등의 성분이 유해 기준에 미치지 않는 극미량이 들어있을 뿐이다.
태양광 설비가 내뿜는 전자파로 가축과 농작물이 피해를 입는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공인 인증시험기관들의 시험 결과 태양광 설비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헤어드라이어, TV, 노트북 등 생활가전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해외의 탈원전 정책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도 많았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대만의 탈원전 정책과 관련된 뉴스를 꼽을 수 있다.
대만이 탈원전 정책과 관련, 지난달 실시한 국민투표를 놓고 상당수 국내 언론들은 '대만이 탈원전 정책을 폐기했다'고 보도했다.
국민투표는 '2025년 전까지 원자력 발전 설비 가동을 완전히 중단한다'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95조 1항 폐지 여부에 관한 것으로, 전체 유권자의 29.84%(투표 참여자의 59.49%)가 동의해 통과됐다.
하지만 대만 정부 측 발언을 보면 이것이 탈원전 정책의 폐기로 직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만 행정원장은 국민투표 후 '2025년 이전을 탈원전 시한으로 여기지 않음으로써 투표 결과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대만 에너지국은 "국민투표 결과가 2025년 이후에도 반드시 원전 사용을 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어서 원전 회복을 위해서는 재토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정치인들이 가짜뉴스 퍼뜨리기도
정치인들이 사실과 달리 왜곡된 정보를 퍼뜨리거나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를 퍼 나르면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김용태 사무총장은 지난달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딸의 대학입시 부정 의혹을 제기하는 SNS상의 낭설을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그대로 옮겼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김 사무총장은 당시 '시험문제 유출 혐의를 받는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이 과거 김 전 장관의 딸 담임으로, 김 전 부총리의 딸이 명문 사립대 치과대에 합격했다'라면서 SNS상에 확산한 주장을 인용해 입시 부정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이 김 전 장관의 딸의 담임도 아니었고, 세 딸 중 치대 출신도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사실관계 확인에 소홀했음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최근에는 바른미래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긴 이학재 의원이 정보위원장직 사퇴 요구를 거부하면서 '당적 변경으로 상임위원장직을 사퇴한 사례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말했다가, 과거 3차례나 그런 전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은 뒤 결국 정보위원장직을 바른미래당에 반납했다.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는 문제로 공항직원과 실랑이가 붙어 '공항 갑질' 논란을 일으킨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건 초기 공항 업무규정을 운운하며 '직원의 갑질'이라고 주장했다가 '위조 여부 확인을 위해 지갑 채 신분증을 제시하는 경우 꺼내서 확인하도록 하는 게 업무규정'이라는 팩트체크의 확인(연합뉴스 12월 24일자)이 있은 뒤 뒤늦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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