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방 춤 저작권 논란 '일파만파'…정부 중재안 통할까
문체부·문화재청 1차 실무회의…무용계 토론회도 이어져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우봉(宇峰) 이매방(1927~2015)의 삼고무와 오고무 저작권 등록을 둘러싼 유가족과 제자들의 갈등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까지 중재에 뛰어든 모양새지만 창작과 전통의 경계를 두고 양측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번 논란이 전통무용계의 창작과 관련한 생산적 고민의 계기가 될 거란 기대도 나온다.
◇ 이매방의 삼고무·오고무 전통일까, 창작일까
27일 무용계에 따르면 이번 논란은 유족이 대표로 있는 우봉이매방아트컴퍼니 측이 지난 1월 한국저작권위원회를 통해 삼고무와 오고무 등 이매방의 4개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등록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삼고무와 오고무는 무용수의 뒤편과 좌우에 각각 북 세 개와 다섯 개를 두고 추는 춤으로, 역동성과 생동감이 특징이다. 최근 방탄소년단이 한 시상식에서 삼고무를 활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봉이매방아트컴퍼니는 삼고무와 오고무가 전통 무용으로 알려졌지만 이매방이 1948년에 창안한 엄연한 창작물임을 주장한다. 삼고무와 오고무를 활용한 공연을 올린 국립무용단 등 국공립예술단체에 저작권 내용과 저작권자를 명시한 내용증명을 발송하기도 했다.
이매방 사위인 이혁렬 우봉이매방아트컴퍼니 대표는 "삼고무는 원작자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무분별하게 보급됐고 그 결과 원형을 잃어버린 채 민속무용으로 인식됐다"며 "고인이 창작한 작품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알리는 것이 이번 저작권 등록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반면 제자들이 주축이 된 우봉이매방춤보존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전통예술로서 널리 향유되어야 할 이매방의 유작을 유족들이 사유화하고 있다며 맞선다.
삼고무와 오고무는 근대 이후 전해져온 북 춤사위를 바탕으로 동시대 예술과들의 협업을 통해 이매방이 재정립한 춤이란 주장이다.
비대위는 "몇 대를 걸쳐 공연된 고유의 춤사위와 가락을 창작물로 둔갑시키는 행위는 전통춤의 보존이나 발전에 기여한 바 없는 우봉이매방아트컴퍼니 대표의 사적 이익을 위한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대학로 연습실 다목적실에서 비대위 주관으로 열린 '춤문화 유산, 저작권 타당한가' 토론회에서도 이매방 춤이 순수 창작물인지와 전통을 기반으로 한 창작물의 저작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 등이 주로 논의됐다.
이날 참석한 김영희 전통춤 이론가는 "그동안 전통춤이나 신무용 공연에서 원작과 원작자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재구성하거나 변형해온 풍토가 이번 논란의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창작자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과거의 공연 관행이 20세기에 들어섰음에도 근대적인 저작 개념으로 전환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무명씨(無名氏)가 춤추던 시대는 지나갔고 새로운 전통춤이 대두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예술감독은 "저작권을 비롯한 예술가의 창작에 대한 결과물이 존중받고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 전통예술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것'이 아니기에 창작의 경계를 구분 짓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문화재청·문체부, 조정 시도…"창작자 인증제도 등도 고려해야"
논란이 일파만파 커짐에 따라 정부까지 중재에 뛰어들었다.
이매방 춤뿐 아니라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창작물 전반의 저작권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 관계자들은 지난 18일 대전 서구 문화재청에서 1차 실무회의를 열고 이매방 춤의 저작권 논란과 관련해 조정안을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방식을 결정하진 못했지만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 중재안을 마련해보기로 했다"며 "현재 양측과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체부와 문화재청은 내년 1월 중순께 2차 회의를 열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춤을 변형하거나 재구성하는 식의 창작에 대한 장기적인 고민을 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며 "이번 논란이 고민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심정민 무용평론가 역시 "유족들의 권리 주장이 아예 틀렸다고 보긴 어렵지만 삼고무, 오고무가 부채춤처럼 많은 단체에 의해 공연돼온 점, 무용계 현실이 영세한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런 문제를 언제까지 차일피일 미루는 것보다 논의의 장으로 활용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새로운 기준이나 제도 도입 등도 논의되는 등 지루하게 흘러가던 전통예술계에 화두가 던져졌다는 평가도 있다.
한덕택 예술감독은 "공연물에 원작자나 안무가에 대한 출처를 명확히 밝히고 공연물에 대한 아카이빙 작업도 필수로 이뤄져야 한다"며 "공연작품의 창작과 안무에 대한 공인 기관이나 단체의 인증제도 등도 고민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김영희 전통춤 이론가는 "이번 논란이 무용계의 생산적 논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춤 창작자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뿐 아니라 춤 예술의 특성에 기반을 둔 저작권을 고민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sj997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