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수장형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문열었다(종합)
옛 담배공장, 개방형 수장고 갖춘 미술관 탈바꿈
"미술관, 성역 아닌 투명한 공간"…'보이는 보존과학실'도 운영
(청주=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거대한 유리문이 열리고, 미술품으로 들어찬 공간이 나타났다. 네 줄로 늘어선 길이 14m, 높이 4m 철제 구조물 사이로 들어서자 최만린, 김세중, 김복진, 문신 등의 조각이 나타났다. 새집 냄새를 잊게 하는 주옥같은 작품들이었다.
국내 첫 수장형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MMCA) 청주가 개관식을 하루 앞둔 26일 언론에 공개됐다.
과천, 덕수궁, 서울에 이은 네 번째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인 청주관은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 소재 옛 연초제조창(담배공장)을 재건축한 공간이다.
연면적 1만9천855㎡, 지상 5층 규모로 짓는 데 1년 9개월간 577억 원 공사비가 투입됐다. 미술관은 10개 수장공간과 15개 보존과학공간, 1개 기획전시실, 2개 교육공간, 조사연구 공간인 라키비움 등으로 짜였다.
국립미술품수장보존센터로 기능하는 청주관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4천점과 미술은행 소장품 1천100점 등 5천100여점(2020년 기준)을 소장할 계획이다. 우선 현대미술관 소장품 1천300여 점과 미술은행 소장품 600점이 옮겨 왔다.
청주관은 '열린 미술관'을 표방한다.
미술품을 수장 상태 그대로 보여주는 개방형 수장고를 1, 3층에 마련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미술관 소장품은 대부분 인생을 수장고에서 보낸다. 극히 일부만 잠깐 전시 때나 바깥나들이 할 뿐이다. 보안과 훼손을 우려한 조치이지만, 미술관이 폐쇄적이라는 인식을 굳게 하는 데도 일조했다.
이러한 문제와 수장고 포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나온 것이 개방형 수장고다. 이미 스위스 샤울라거, 영국 빅토리아앤드앨버트 등지에서 개방형 수장고를 운영한다.
이날 공개된 358평 1층 개방형 수장고에는 현존하는 근대조각 중 가장 오래된 김복진 '미륵불', 페미니스트 미술가 니키 드 생팔 조각 '검은 나나',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 '데카르트' 등 명작이 한데 놓여 있었다. 이곳은 행인들도 일부 작품을 창밖에서 보는 '보이는 수장고' 성격도 띤다.
큐레이터가 적극 개입하는 일반적인 전시와는 달리, 개방형 수장고에서는 관객이 좌대와 선반에 놓인 작품들을 이끌리는 대로 감상한다. 전시를 위한 특별한 장식이 없는 만큼, 작품을 '날 것' 그대로 만나는 느낌도 강하다.
현장을 안내한 박미화 학예연구관은 이를 두고 "기존 전시장이 백화점이라면 여기는 '코스트코'라고 할 수 있다"고 비유했다.
4층 특별수장고는 연구자들이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을 심도 있게 열람, 조사하는 공간이다. 임응식, 육명심, 김정숙, 서세옥 등 미술관에 작품이 30점 이상 소장된 작가와 장 팅겔리, 베르나레 브네 등의 대형 작품이 일차로 배치됐다.
미술관 내부에서도 가장 폐쇄성이 강한 보존과학실도 이곳에서는 '보이는' 형태로 운영한다. 관람객들은 투명한 창을 통해 그림 수복 과정 등을 생생하게 지켜본다.
장엽 개관준비단 운영과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청주관은 미술관이 더는 비밀스러운 성역이 아니라 투명한 공간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라면서 "미술품 보존과 관리를 청주 시민을 비롯한 국민이 감독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청주관을 중심으로 전국 공·사립미술관 보존처리 서비스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50억 원에 달하는 관련 장비가 청주관에 배치됐다.
기획전시실에서는 개관특별전인 미술관 소장품으로 구성된 '별 헤는 날: 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열린다. 강익중, 김수자, 임흥순, 정연두 등 작가 15명의 회화와 조각, 영상 23점이 전시된다.
장 운영과장은 기본적으로 수장보존센터인 청주관에서 굳이 기획전을 하는 이유로 "개방수장고 구조상 회화나 미디어, 설치 작품을 수장·전시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기에 별도 공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미술관은 지역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와 지역 미술관, 작가 레지던시 등과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할 계획이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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