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70주년…동백꽃 물결 타고 평화·인권 메시지 만방에

입력 2018-12-27 08:00
제주4·3 70주년…동백꽃 물결 타고 평화·인권 메시지 만방에

전국서 희생자 추모 열기, 국외 언론인 찾고 교황 평화 메시지

생존수형인 재심서 무죄 판결여부 관심…올바른 역사정립 과제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서서히 저물어가는 2018년은 제주4·3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는 변곡점이 됐다.

역사속에 묻혀있던 제주4.3이 70주년을 맞아 아픈 역사를 드러내고 치유를 위한 몸부림을 시작했고 제주에 국한된 4.3이 국내외에 실상을 알리면서 진실규명을 위한 걸음을 힘차게 내디뎠다.

제주4.3 바로알기는 지난 4월 추념식이 계기가 됐다.

4월의 추모 분위기를 타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동백꽃 배지' 달기가 전국적으로 유행처럼 번졌고 문화,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등이 서울 광화문 등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를 열어 제주4·3을 전국에 알렸다.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는 유족과 평화활동가들이 위령 행사를 진행했다.

세계인들의 발길은 4·3 영령이 잠든 평화공원으로 이어졌다.

제주 사람들은 오랫동안 4·3을 가슴 속에 안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빨갱이 콤플렉스', '정신적·신체적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후인들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4.3이후 공동체 파괴는 제주 사회를 짓눌렀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도민들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점차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4·3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4·3을 전국과 세계에 알리는 일이 4·3과 같은 비극을 막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4·3이 70주년을 맞아 전국화와 세계화에 한 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4·3 당시 미군정의 책임을 규명하는 등 올바른 역사 정립의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다.



◇ 전국화와 세계화의 한 해

동백꽃은 화사한 꽃송이 채로 뚝 떨어져 마지막을 맞는다.

70여년 전 4·3 영령들도 국가의 공권력에 힘없이 차가운 땅에 스러져 갔다.

강요배 화백의 4·3 그림 '동백꽃 지다'가 1992년 세상에 공개되면서 동백꽃은 가여운 제주4·3 희생자를 상징하게 됐다.

제주4·3 추념식이 있었던 지난 4월 한 달, 4·3의 상징인 동백꽃 물결이 전국에 퍼졌다.

유명 연예인과 인사들이 동백꽃 배지를 가슴에 달아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제주4·3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였다.

국민들은 가슴에 동백꽃을 새기고 두 손에는 4·3 소책자 '4·3이 머우꽈?'(무엇입니까?)를 들었다.

이 책은 제주4·3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썼다. 4·3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입문서 역할을 했다.



제주4·3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지난 4월 3일 70주년 희생자 추념식이 제주에서 열렸다.

추념식은 문재인 대통령과 각 정당 대표 등 정치인, 문화계 인사 등 1만5천여명이 참석해 전국으로 생중계됐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국가에 의한 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과거사 해결 원칙에 따른 지원을 약속했다

70주년을 맞아 4월 3일이 지방공휴일로 지정되고 그날 사상 처음으로 제주도 전체에 묵념사이렌이 울렸다.

또 4월에 인천·수원·안산·춘천·세종·울산·부산·목표·광주·진주 등 전국 19곳에 분향소가 설치됐고 각 지역 예술단체는 문화제 형태의 추모행사를 펼쳤다.



제주4·3평화공원에서 서울 광화문광장까지 전국 자전거 동호인들이 '4370 동백꽃 라이딩'을 펼치며 제주4·3을 전국에 알렸다.

정부종합청사에는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광화문광장에는 4·3항쟁 희생자 1만5천명의 이름을 일일이 새겨 넣은 120m 규모의 흰 천이 둘러쳐졌다.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이하 70주년 기념사업위)는 제주4·3의 전국화에 그치지 않고 세계로 알리는 사업도 진행했다.

천주교 프란치스코 교황은 희생자 추념식 전날인 지난 4월 2일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 명의의 메시지를 보내 "4·3 70주년 기념식이 치유와 화해를 증진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70주년 기념사업위는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지난 3월 9일 50개국 80여명의 언론인을 초청해 제주4·3의 아픔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또 외신기자들 초청행사와 국내 거주 외국인 대상으로 4·3평화기행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소책자 '4·3이 머우꽈'와 '4·3 길을 걷다' 영문판도 발행했다.



4·3 진상규명 초기부터 적극적인 활동을 해온 제주 출신 재일교포들은 도쿄와 오사카에서 위령 행사를 진행했다.

국외에서는 처음으로 오사카에 4·3 영령들을 추모하는 위령비를 세웠다.

또 제주4·3 70주년 오사카 및 도쿄 평화방문단 200여명은 제주서 열린 70주년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했다.

평화방문단은 희생자 추념식 참석 외에 4·3유적지 기행과 고향 땅 방문 등의 행사를 진행했다.

김용철 제주도 4·3지원과 학예연구사는 70주년 기념사업 평가에서 "올해처럼 4·3의 이야기가 도 내외에서 많이 언급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면서 "서울, 강원 등 전국 각지에서 '동백꽃 배지'를 달고 싶다며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전화 문의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 끝나지 않은 진상규명 운동

정부의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4·3은 1947년 3·1절 기념식 발포사건 때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군경의 진압 등 소요사태 와중에 양민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적게는 1만4천, 많게는 3만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잠정 보고됐다.

좁은 섬에서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했고 그 후유증을 극복하고 진상규명을 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리고 있다.



70주년인 올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진상규명은 사법부에서 물꼬를 텄다.

제주지법은 지난 9월 4·3 생존 수형인이 제기한 재심사건을 받아들였다.

현우룡(93) 씨 등 18명은 4·3 소용돌이치던 1948∼1949년 계엄령과 국방경비법에 의해 이뤄진 군사재판 자체가 위법했고 불법 구금과 고문 등으로 모든 것이 조작됐다며 지난해 4월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이 이들의 청구를 받아들이면서 사법부가 4·3 당시 군사재판의 위법성을 따지고 이들에 대한 무죄나 공소기각을 의결할 가능성이 열렸다.

지난 4개월간의 심리를 마치고 17일 이뤄진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공소기각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현씨 등 청구인들에 대한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면서 공소 제기(기소) 자체가 법률의 규정을 위반해 무효라고 봤다.

70여년 만에 이뤄지는 재심의 역사적 최종 판결일은 내년 1월 17일이다.

올해는 미래 세대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자리를 잡는 계기도 됐다.

제주도교육청은 지난 3월 19일부터 일주일간 초·중·고 학교를 대상으로 4·3 평화·인권 교육 주간을 운영했다.

도교육청은 교육부의 '역사과 교육과정 집필 기준'에 4·3 집필 기준안을 반영하도록 힘을 쏟고 있다.

4·3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이들을 초청해 체험담을 듣는 명예교실, 4·3에 대한 전국 교사 연수 등도 추진했다.



4·3은 미군정 체제하에서 발생했다.

70주년을 맞아 미국과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운동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70주년 기념사업위, 범국민위 등은 지난해 10월부터 '미국과 유엔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10만인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1년 후인 지난 10월 31일 10만명의 서명을 받아 미국 대사관에 서명록을 전달했다.

제주4·3평화재단이 이달 개최한 평화포럼에서도 미국의 책임 문제가 주요 의제로 채택돼 4·3에 대한 미국의 개입에 대한 진실규명과 정치적, 법적, 윤리적 책임에 대해 다양하게 논의했다.

4·3의 올바른 이름을 찾는 등 완전한 해결을 위한 학술대회가 열리고 노동자, 농민의 시위도 전개됐다.

4·3은 이념과 분단의 굴레로 여전히 '항쟁', '학살', '사건', '반란'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명확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희생자 배·보상을 담은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말 국회에 발의됐으나 4·3 진상규명 염원과 달리 현재까지 특별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박찬식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은 4·3의 지속적인 전국화와 미국의 책임 규명, 연구 인력 양성, 4·3운동의 지속 확장 등을 남은 과제로 제시했다.

ko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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