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가족이었으나 흩어진 백자들…이만하면 상봉 이뤘다 싶죠"

입력 2018-12-26 07:00
"한때 가족이었으나 흩어진 백자들…이만하면 상봉 이뤘다 싶죠"

2004년부터 각국 조선백자 컬렉션 찍어온 구본창, 부산서 개인전

"미니멀하다며 북유럽 디자인 찾지만, 진정한 미니멀리즘은 백자"

8월 교수 퇴임 후 '황금' 작업도 본격 모색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철강공장 흔적을 지워낸 화이트큐브가 백자를 품었다. 엷은 복숭앗빛을 머금은 백자들이 아슴푸레 다가온다. 이국의 박물관 전시장을 지키던 백자들은 그렇게 사진가 구본창(65)을 통해 먼 고향을 찾아왔다.

"이만하면 이산 상봉을 이뤘다 싶죠. 조선왕실에 납품하는 백자 가마가 정해져 있었던 만큼, 이들 백자는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였을 테니깐요."

구본창이 각국 박물관과 미술관의 조선백자 컬렉션을 찍어온 지 내년이면 15년이 된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 F1963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Koo Bohnchang'은 그간 '백자' 작업 중 9점을 골라 선보이는 자리다. 2014년 시작한 '청화백자' 연작 6점과 대형 '제기'도 나왔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1990년 일본에서 사진 한장을 우연히 본 기억부터 더듬었다.



온통 하얗게 차려입은 백발의 한 외국인 여성이 커다란 달항아리 옆에 살짝 몸을 비튼 채 앉아 있었다. 사진 속 여성이 오스트리아 출신 도예가 루시 리이며, 그 달항아리는 루시 리의 스승, 버나드 리치가 "나는 지금 행복을 안고 간다"는 말과 함께 조선에서 사 간 것이란 사실은 2004년 '백자' 작업을 시작한 뒤에야 알았다.

"도자기들이 구원받기를 기다리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일제강점기 때 나라 밖으로 흩어져버린 백자를 한 자리에 모으고 싶었어요. 제 사진으로라도 제 자리에 돌려주고 싶었어요."

연유가 어떻든, 내로라하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귀한 소장품을 쉽게 내어줄 리 만무했다. 작가는 촬영을 허락해달라는 편지를 쓰고 또 썼다. 다행히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 소장품을 찍은 것이 그 진심을 증명하는 훌륭한 견본이 됐다.





그는 영국박물관, 기메박물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세계에서 손꼽히는 조선백자 컬렉션을 카메라에 차곡차곡 담았다. 작가는 "이제는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이나 일본 개인 소장가 등이 먼저 찍어 달라고 연락한다"라며 미소지었다.

구본창 작업이 전시도록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는 "도록 목적은 정확한 재현에 있지만, 저는 전체를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더라도 그 느낌과 공간감을 표현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대상과 배경 경계를 뚜렷이 하지 않고 포커스 아웃을 통해 비현실감을 강조한 것은 그 때문이다. 두리둥실 떠다니던 백자들은 어느 순간 아득한 공간 너머로 사라질 듯하다. "선비들이 백자를 앞에 두고 즐겼을 그 맛과 분위기를 살리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요."



수백 점이 넘는 백자를 찍어온 작가는 "조선백자는 보면 볼수록 온기가 느껴진다"라면서 "중국이나 일본 도자기는 화려하게 꽉 찬 느낌이라면, 조선백자는 좀 삐뚤빼뚤하면서도 깊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인생 쓴맛 단맛 다 본 사람이 풍기는 그런 맛이라고나 할까요. 깨끗하고 완벽하게 포장된 상품이라는 느낌은 덜하지만, 하나하나가 생명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요즘 사람들이 미니멀하다면서 북유럽 디자인을 찾지만, 진정한 미니멀리즘은 조선백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8월 대학에서 정년퇴임한 작가는 '백자'에 이어 '황금' 작업도 모색 중이라고 했다. "신라를 비롯해 세계 많은 문명이 황금에 반한 이유를 알고 싶어서 인도부터 시험 삼아 돌아보려 합니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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